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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오늘

아시아에서 인문학은 가능한가


아시아 인문학자대회 “왜 유럽사상가 푸코만 바라보나”
입력: 2008년 10월 09일 17:46:44
 
한국·중국·일본·말레이시아·타이 등 아시아 8개국의 인문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시아적 가치를 탐문하고 인문학 담론의 지역 연대를 모색한 ‘아시아 인문학자대회’ 첫 행사가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학술진흥재단 주최 인문학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서울 중앙대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는 각국 인문학계가 공통적으로 맞닥뜨린 인문학 위기에 대해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신자유주의와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아시아 인문학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참가 학자 가운데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 사카이 나오키 미 코넬대 교수, 천광싱 대만 교통대 교수 등 한·중·일 대표 학자의 발표 내용을 소개한다.


■ 신영복 교수 =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패권적 질서가 막강한 지배력에도 불구하고 불안정성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문화와 가치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명사적 의미를 갖는다. 알다시피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사회다. ‘사람 한 명=구두 한 켤레’라고 하면 비인간적이라고 느끼지만 구두 한 켤레가 아니라 연봉 10억원이라고 하면 이 등식의 비인간적 의미가 가려진다.

이 등식에서 자신을 화폐화할 수 없는 사람은 도태된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전통은 화폐가치가 아니라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삼았다. 촘촘한 그물로 물고기를 잡지 않고 이른 봄에 나무를 베지 않았다.

또한 개별성보다는 관계를 기본적인 관점으로 삼고, 흡수와 합병의 논리인 ‘동(同’이 아니라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화(和)’가 기본이 됐다.

나는 이를 물의 정신으로 본다. 첫째, 물은 모이는데 이는 연대성의 교훈이다. 둘째, 물은 어떤 조건에서도 물길을 열어가는 유목성을 갖는다. 셋째, 물은 항상 낮은 데로 흐르며, 넷째, 물은 결코 다투지 않는다.

■ 사카이 나오키 교수 =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적 사회구조는 인종주의적이고 배타적인 폭력을 깔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그 한 예다. 이것의 근원을 따지기 위해 메이지유신 말기 후쿠자와 유키치로 돌아가본다.

후쿠자와는 사회적 관계의 질서인 유교를 부정하고 자율과 독립을 가진 개인을 강조했다. 궁극적 가치를 자아 또는 개체에 부여함으로써 개인이 친족관계를 벗어버릴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개인들은 국민 혹은 국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다. 후쿠자와는 ‘번’의 봉건적 종속관계를 해체했지만 일본인과 비일본인의 차이 없이 국가를 건설하는 게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단일민족 사회라는 신화의 기초 위에서 국민이란 감정이 발명된다. 이것은 후쿠자와뿐 아니라 중국 5·4운동의 지식인들, 한국의 이광수 등이 공유했던 사상이다. 그러나 유교 사고방식대로 개인을 관계로 인식하는 한, 내부와 외부는 폐쇄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것은 오늘날 급증하는 이민이라는 맥락 속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 천광싱 교수 = 인문학의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특히 미국과 유럽 중심의 인문학 담론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현실, 전통에 천착하는 방향으로 인문학 연구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일례로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서구에서 볼 수 없는 독자적인 이론으로 남북 분단상황에 대한 냉철한 시각과 깊이 있는 해설을 엿볼 수 있다. 이론의 보편성은 서구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시민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텄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아시아에는 뛰어난 사상가가 많았지만 그들을 존중하는 문화 풍토가 자리잡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양사상가보다 유럽 문화를 이야기하는 푸코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안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루쉰은 중국의 소설가이자 위대한 사상가였지만 서구적인 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상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20세기의 위대한 아시아 사상가들의 흐름 속에서 지적 전통의 흐름을 잡아나가야 한다.

<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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