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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아시아에서 산다는 것 - - 필리핀 보홀(Bohol)의 듀에로(Duero)에 있는 일제국주의 만행장소. 당시 학살장소에 사당이 지어졌다. 1944년 필리핀 보홀의 듀에로마을에서는 일본군의 만행이 있었다. 마을의 원주민 13명을 학살한 것. 만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인근 마을을 다니며 부역에 참여하지 않은 청년들을 칼과 총으로 무참하게 살육했다. 듀에로의 곳곳에 이를 기억하기 위한 사당이 지어져 있다. 공간은 다르지만 우리의 일제 강점기와 필리핀의 일제 강점기가 차이가 없듯이, 아시아의 고통은 치욕과 고통의 역사였다. 아시아에서 산다는 것은 어쩌면 공통의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제국주의:필리핀인들의 시련과 저항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권오신 (문학과지성사, 2000년) 상세보기 더보기
재이주를 꿈꾸는 필리핀 귀환 이주노동자들 재이주를 꿈꾸는 필리핀 귀환 이주노동자들 이세기 얼마 전 나는 귀환 이주노동자 리서치를 위해 필리핀을 방문했다. 필리핀은 전 인구의 10%인 800여만 명이 이주노동을 하는 세계 최대의 인력송출 국가다. 필리핀 연간 총생산(GNP)의 30%가 넘는 120억 달러가 바로 이주노동을 통해 송금해온 돈이다. 해외이주노동을 희망하는 필리핀인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수도 마닐라(Manila)에 위치한 필리핀해외고용청 POEA(Philippines Overseas Employment Agency)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다. ‘나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간다’는 노동력 수출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보홀(Bohol)필리핀 중부 비사얀제도 남부의 섬에서 만난 레오(26)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인근 세부(C.. 더보기
리아의 김치 필리핀 보홀에서 귀환 이주노동자 리아 씨를 만났다. 그녀는 1999년 한국으로 이주노동자로 와서 2006년까지 시흥,부산,인천 남동공단 등지를 떠돌며 일을 했다. 7년 동안 일하는 동안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와 언니가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향에 올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그녀는 공장에서 동료들과 난생 처음으로 소주를 먹었단다. 그리고 그녀는 밤새 울었다고 했다. 당시에 그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같은 아시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인의 멸시에 찬 냉소였다고 했다. 그녀와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함께 점심식사를 했는데 미역국에 김치가 나왔다. 그녀는 7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