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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2015년 이주노동자, 이주민 통계 2015년 이주노동자, 이주민 통계(2015년 1월 현재) 1. 체류외국인 - 1월말 현재 체류외국인 1,774,603명, 전년 동월 1,567,730명에 비해 13.2% 증가 - 이주노동자 569,081명, 결혼 이주민 150,798명(2015.1.31. 현재) - 국적별로는 중국 918,951명(51.8%), 미국 134,490명(7.6%), 베트남 129.423명(7.3%), 필리핀 51,836명(2.9%), 인도네시아 42,520명(2.4%) 순임 - 지역별로는 수도권에 678,102명(61.9%)이 거주하고 있으며, 영남권 215,811명(19.7%), 충청권 101,764명(9.3%), 호남권 70,362명(6.4%)의 순으로 거주하고 있음 - 1994년 이후 금년 1월말까지 난민신청자는 9,.. 더보기
이세기『이주, 그 먼 길』(후마니타스) 저자 서문 33 1부___ 불안한 귀환, 그 후 이주, 그 먼 길 41 뫼비우스의 끈 56 2부___ 선택 없는 노동 헤이, 헤니 73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78 거세되는 영혼 84 우리가 희생양인가 89 굿다하 피스! 95 힘내요, 조안 103 알라여, 이 사람을 끝까지 보호하소서 110 스리랑카에서 온 편지 115 웃자, 웃자, 아르빈 120 베트남 삼형제 126 타슈켄트에서 온 무용수 131 밥 먹었어요, 델로와? 137 진돗개와 야반도주 143 저자 서문 33 1부___ 불안한 귀환, 그 후 이주, 그 먼 길 41 뫼비우스의 끈 56 2부___ 선택 없는 노동 헤이, 헤니 73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78 거세되는 영혼 84 우리가 희생양인가 89 굿다하 피스! 95 힘내요, 조안 103 알라여, .. 더보기
세계 이주민의 날에 즈음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 비준을 촉구하며 12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입니다. 2000년 12월 4일, UN 총회는 국경을 넘어 타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전 세계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이 권리와 자유를 누려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이 사회에 미치는 기여를 인정하며, 축하하기 위해 매년 12월 18일을 'UN 세계 이주민의 날'로 제정하고 이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UN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UN 이주민협약)'이 UN 총회를 통과한지 20주년이 되는 해(채택일 1990. 12. 18)입니다. 세계 43개국이 비준하고 16개국이 서명한 국제 인권협약에 한국은 아직도 가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체류 자격, 노동 자격과 관계없이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한 국제협약을 즉각 비.. 더보기
파트타임 인생 파트타임 인생 이세기 최저임금? 이곳에는 없어요 봄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골목길에 들어서면서 몇 번 하늘을 쳐다보았다. 황사가 드리워진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꽃은 언제 기별이 오려나? 아마도 꽃이 피면 웅크린 마음이 조금은 환해질 것이다. 돈(37세) 씨의 집은 다가구주택이 닥지닥지 붙은 골목에 있다. 골목 입구 담벼락에 이파리가 떨어진 앙상한 개오동나무가 삐죽하게 서 있다. 초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나무는 시원한 이파리를 보일 것이다. 2층으로 향하는 다가구주택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문을 열자 손바닥만 한 부엌이 나온다. 그리고 겨울을 함께 난 장미 화분 하나가 놓여 있다. 때마침 부인 린(39세) 씨가 음식을 준비하는 중이다. “마부하이.” 내가 타갈로그어로 인사를 하자 그는 곧바로 “안녕하세요.. 더보기
당신, 꿈에 와주세요 당신, 꿈에 와주세요 이세기 실라 씨의 눈물 실라(44세) 씨는 한국에서 17년간 여성노동자로 살았다. 처음 5년 동안 무려 열여섯 군데의 공장을 전전했고, 최근까지 다닌 공장에서는 10년간 검사반에서 일했다. 철새도 아닌 그녀가 열일곱 군데의 공장을 다닌 사연에는 사뭇 눈물이 배어 있다. 이유인즉 그녀의 아들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들은 올해 공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은 그런 문제쯤 아무 일도 아니지만 당시 돌을 막 지난 아이의 의료보험증을 만들기 위해 선택해야만 했던 시름겨운 신산한 삶이었다. 그녀는 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비참했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남편과 3년 조금 넘게 함께 살았는데, 백혈병으로 갑작스럽게 죽었어요. 그때 우리 아이가 17개월이 막 지난 무렵이었어요.” 19.. 더보기
시민 K씨 시민 K씨 이세기 귀화자의 비애 그를 시민 K씨라고 부르겠다. 시민 K씨의 나이는 38세. 한국에 들어온 지 7개월째다. 그에게는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딸과 이제 막 백일이 지난 딸아이가 있다. 그는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났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40여 가구가 벼를 심고 농사일을 하는 촌이다. 그곳은 군산에서 태어난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때 가족을 이끌고 두만강을 넘어 길림(吉林)을 거쳐 정착한 곳이다. 성자촌에서 정착한 가족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한국으로 오기를 포기하고 중국 내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 농사일을 하며 살았다.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상급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녕안시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것이 가족과의 이산(離散)의 시작.. 더보기
[새해맞이] 한 하늘 아래에서 사는 우리 인생의 노래 - 하킴 피부가 까맣거나 하얗거나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그 누구 그 어디서라도 나에겐 다르지 않네 사람 피는 다 같이 빨갛고 우리는 모두 한 사람에게서 왔네 나는 이미 알고 있네 한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 하늘 구름처럼 같은 바람에 춤을 추며 살아가네 하나의 태양에서 나오는 햇살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누구는 행복하고 또 누구는 슬픈 현실 모든 사람이 사람에게 모든 나라가 나라에게 아껴주며 돕고 살아야 하는 한 하늘의 운명 지구에 사는 우리는 모두 가족 * 시인 하킴은 한국에서 16년간 이주노동자로 생활하다가 2009년 강제단속으로 추방당했다. 그는 '아시아문학' 낭송의 밤 등에 참여하여 이주노동자의 비애와 사랑을 주제로 시를 발표했다. 구별짓기 (상)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 더보기
[10대뉴스] 2009 다문화사회 10대 뉴스 1. ‘다문화사회’로 키워드 변화! 130만 명의 이주민 시대. ‘이주노동자’에서 ‘다문화사회’로 키워드가 바뀌고 있다. 그동안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했던 ‘산업연수생제도’나 ‘고용허가제’ 등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키워드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2009년 들어와서 이주민 100만 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관련 키워드가 ‘다문화사회’로 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문화가정’, 이주아동교육’, ‘한부모 가정의 증가’ 등 이주과정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엔미래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국제결혼율이 10%을 넘고 있으며, 2050년에는 이민자와 자녀들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21.3%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 더보기
빈껍데기뿐인 '다문화 대책' [시론] 빈껍데기뿐인 ‘다문화 대책’ 오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모든 이주민이 인간으로서 누리는 모든 권리와 자유는 인종, 국적 등의 차별 없이 행사돼야 한다’ 등 이주민 인권보장에 대한 내용이 올해에도 이슈가 될 것이다. 법적 지위를 불문하고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많은 이주민은 각종 언론보도와 설문조사에서 보듯 자신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임을 고발하고 있다. 성차별은 물론이고 잦은 가정폭력, 이주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시민권적 권리들이 제한받거나 차별받고 있다고 국제엠네스티도 경고하고 있다. 이주민 100만명 시대를 넘어선 지금, 다문화사회에 대한 보도는 언론의 단골메뉴가 된지 오래다.. 더보기
갈 곳 없는 이주청소년 이세기 방에 갇힌 아이들 벌써 세 번째다. 중국에서 온 장리(여, 16세)를 만난 것이. 장리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평소에 알고 있던 이주민으로부터 자신이 알고 있는 중국 하얼빈(哈爾濱)에서 온 결혼 이주여성이 있는데,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만나잔다. 함께 찾아간 집은 전철 철로변에 닥지닥지 붙어 있는 연립주택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앳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문을 열어준다. 이름을 묻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다. 그저 웃음뿐이다. 아이의 어머니인 왕홍위(42세)씨가 딸이라고 한다. 한국에 온지 3개월밖에 안되어 말을 할 줄 모른단다. 장리가 공책에다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썼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딸과 함께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한 왕홍위 씨는 2005년 결혼 이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