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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이주노동자

두 이주민의 세상살이 싸왓디카, 티마폰 씨의 노래 고향에는 부모님이 계신다 사람들이 친절하다 물소가 생각난다 여러 가지 야채가 많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 티마폰(26세)씨가 ‘이주민과 함께하는 아시아 문학 낭송제’에서 낭송한 「고향」이라는 자작시다. 고향의 향수가 행간에 짙게 묻어 있다. 한줄 한줄 정성껏 읽어 내려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언뜻 그녀가 살던 태국의 동북부 농카이가 떠올랐다.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논에 물소 떼가 어슬렁거리고 여유롭고 순박한 삶이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지듯 떠오른다. 낭송을 마치자 그녀는 한국어를 공부하며 난생 처음 시를 썼다며 수줍어한다. “제 고향 농카이는 라오스와 국경 지대에 있어요.” 그녀는 농카이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타버라는 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오기 전까지 회사생활.. 더보기
귀환 이주노동자 리아 이야기 1. 리아가 사는 섬 우기가 막 시작된 필리핀 세부(Cebu) 막탄공항에 내리자 열대야의 후덥지근한 날씨가 기다렸다. 자정을 넘은 시간, 차를 타고 보홀(Bohol)행 배가 떠나는 항구까지 이동했다. 필리핀 사람들은 밤잠이 없는지 새벽으로 가는 시간인데도 어둑한 거리에 사람들이 서성인다. 삼삼오오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새벽 2시. 항구의 여객선 터미널에는 정문을 지키는 경비와 몇몇의 필리핀 사람들이 대합실 의자에 잠들어 있다. 밤샘을 할 요량으로 매표소 앞 맨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웠다. 하지만 초행길인 탓도 있지만 사람들의 오가는 발길로 잠이 오지 않는다. 간간이 항구에는 배가 들어와 여행객을 풀어 놓는다. 여느 객선 터미널과 다를 바 없다. 소란이 멈추고 여행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또 다시 정적.. 더보기
재이주를 꿈꾸는 필리핀 귀환 이주노동자들 재이주를 꿈꾸는 필리핀 귀환 이주노동자들 이세기 얼마 전 나는 귀환 이주노동자 리서치를 위해 필리핀을 방문했다. 필리핀은 전 인구의 10%인 800여만 명이 이주노동을 하는 세계 최대의 인력송출 국가다. 필리핀 연간 총생산(GNP)의 30%가 넘는 120억 달러가 바로 이주노동을 통해 송금해온 돈이다. 해외이주노동을 희망하는 필리핀인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수도 마닐라(Manila)에 위치한 필리핀해외고용청 POEA(Philippines Overseas Employment Agency)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다. ‘나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간다’는 노동력 수출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보홀(Bohol)필리핀 중부 비사얀제도 남부의 섬에서 만난 레오(26)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인근 세부(C.. 더보기
이주, 삶은 불안하다 이주, 삶은 불안하다 - 귀환 이주노동자를 찾아서 이 세 기 1. 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사욍 사욍이 고향을 떠나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온 것은 그의 나이 28세였다. 태국 동북부 오지인 잠롱에서 한국으로 올 때, 그는 고향에다 땅을 사 연못이 딸린 집을 짓고 가정을 건사하며 사는 꿈을 꿨다. 그가 태어난 마을은 180여 가구 700여 명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지방 국도의 조그만 대로변을 사이에 두고 몇 가구의 집이 흩어져 있고, 마을 입구에 초등학교와 보건소, 그리고 사원이 하나 있을 뿐 농사를 짓는 여느 태국의 농촌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농사를 짓는 부모에게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사욍은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들 또래가 그렇듯이 일자리가 없어서 무직으로 생활해야만 했다. 친구들의 .. 더보기
태국에서 만난 귀환 이주노동자 리욤 태국에서 만난 귀환 이주노동자 리욤은 용인에 있는 사업장에서 산재를 당했다. 한국에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지 2개월도 채 안된 어느 날 아침 프레스에 그의 손가락이 싹둑 날아 갔다. 그는 다섯 손가락이 잘린 보상으로 3,100만 원을 받았는데 그것으로 태국에 와서 택시 2대를 소유한 사장이 되었다. 헤어질 때 그는 내게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오른손을 치켜 세우며 배웅을 했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달라는 뜻 같았다. 그의 삶이 송곳이 되어 폐부를 찔렀다. 태국의 이해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한국태국학회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5년) 상세보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