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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 관련 자료




결혼이민자의 한국국적취득 변화과정은 한국 정부의 결혼, 젠더, 시민권 그리고 혈통 및 인종에 대한 사고와 그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 48-97년, 개정전 국적법
남성만을 '진짜' 주체로, 시민으로 상정하는 결혼관. 97년 전까지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외국인 여자의 경우 대한민국 국적을 자동적으로 취득할 수 있었고, 한국인 여자와 결혼한 외국인 남자의 경우 3년 이상 한국에 거주해야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한국 남자의 배우자는 한국 남자가 한국인으로 가지게 되는 시민의 지위와 힘으로 결혼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여성에게는 자신의 남편을 밀어줄 정도의 힘이 없다. 여성은, 멕키논이 단칼에 정리했듯, 이등시민이니까.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여성이 어떤 (부계 중심의) 가족에서 다른 (부계 중심의) 가족으로 이전되는 것이므로, 외국인 여성이 한국인 남성과 가족의 품에서 국적을 취득할 수는 있어도,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외국인 남성이 그럴 수는 없다. (외국인) 남성이 아닌, (한국인) 여성이 가족을 옮긴거니까. 게다가 이 국적취득시스템에 의하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에겐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따윈 없다. 결혼과 가족 생활의 진짜 주체인 남성을 따라야 하니까.
부계를 중심으로 한 혈통과 인종 분류. 사실상 97년 이전 국적법은 한국인 부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을 순수한 한국인으로, 외국인 부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을 순수한 외국인으로 분류하는 인종에 대한 부계혈통식 사고방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누구의 피를 이어받았는가라는 질문 속에서는 피와 살을 준 그녀들은 생략되어 있다.

  • 97년 국적법 개정후
97년 국적법에서 천명한 부계혈통주의에 대해 위헌심판이 제청되고, 한국 정부가 CEDOW 협약에서의 국적취득에 있어서의 남녀평등조항 유보를 철회하면서, 국적법은 전문이 개정되었다. 우선 부계혈통주의가 부모양계혈통주의로, 혼인한 여성의 국적 자기결정권을 주는 방향으로, 외국인 부와 한국인 모의 자가 모의 호적에 입적가능하도록 변화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외국인 남성 역시 결혼으로 국적을 자동취득할 수 있도록 외국인 배우자의 국적취득과정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는 점. 역으로,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모두 2년동안 한국에 거주했음이 인정되어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근거는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위장결혼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역시 남녀를 차별하는 체계를 제거하려 하면, 여성에게만 적용되었던 장애를 모두에게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소책이 제공된다.

문제는 이러한 국적법 개정으로 인해 피해를 겪게 되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점. 저출산과 혼인율 감소의 문제 해결의 방식으로 제공되어 점차 늘어나고 있었던 국제결혼정보업체 등을 통한 국제결혼이 배경이 되는 순간, 한국국적취득의 험난한 과정은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 여성들의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촉진제가 된다. 남편들이 이 여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국적취득을 무기처럼 활용하고, 2년 동안 한국국적이 없는 상태에서 그 여성들은 그 무기를 쥔 남편에게 취약하다. 남편의 폭력을 못견디고 헤어지게 되면 불법체류자로 본국으로 송환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내할 수밖에 없으며, 설사 인내한다 하더라도 남편이 국적취득과정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역시 국적취득은 물 건너간 일이 될 수 있다. 이주여성과 지원단체들이 이 끔찍한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2004년 배우자의 사망, 실종, 본인의 귀책사유없이 이혼한 경우, 자녀 양육이 필요한 경우에 국적취득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를 입증하는 것은 외국인 배우자들에게, 특히 한국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 여성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 도입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법무부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 한국국적취득을 위한 '귀화적격심사'를 대체할 수 있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이수제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법무부는 이민을 독자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조직개편과 늘어나는 이민을 감당하기 위한 제도마련을 구상하고 있다. 급변하고 있는 한국상황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것이 부서의 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이라하더라도, 환영할만 하다. 하지만, 하려면 정말 제대로 해야 한다. 적당히, 겉모습만을 꾸미고 포장해서 내놓은 정책이 힘겹게 하루하루 적응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참혹하게 짓밟을 수 있다는 사실을 좀 이젠 알아야 하지 않나? 근데 이 놈의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는 이름만 번듯하지-사회통합, 얼마나 혹하는 말인가- 쓸모도 없고, 심지어 인권도 침해할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

우선,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가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하면, 그동안 한국국적 취득을 위한 일반귀화를 위해 실시되던 귀화적격심사-필기 및 면접-가 한국에서 생활하는 데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프로그램 이수 및 심사제도로 대체하고자 하는 방안이다. 생각없이 보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귀화적격시험이 한국인도 잘 모르는 문제가 제출되고 '보물 2호' 따위를 단순히 암기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비판이야 워낙 있어 왔던 것이고, 그걸 바꾼다는 데야 무슨 말을 하겠나. 게다가 한국어 및 한국사회적응을 위한 수업을 시켜준다는 데, 외국인에게는 훌륭한 기회제공인 듯 하다.

그러나,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를 찬찬히 훑어보면, 이런 무식한 프로그램이 없다. 완전 인권 침해의 장이다. - 법을 수호하는 법무부가, 이런 짓을?
  1. 결혼이민자의 국적취득과 연계 - 그동안 국적법상 간이귀화로 분류되어 귀화적격심사를 받지 않고 2년 이상 거주하면 국적을 취득했던 결혼이민자들이, 사실상 이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의 주된 대상이다. 일반귀화자의 귀화적격심사를 대체하는 프로그램 대상에 왜 간이귀화대상인 국민의 배우자까지 포함되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드는 건 당연. 그러나 법무부의 설명자료를 보면, 한국어나 사회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결혼이민자들이 자녀교육까지 하니 더욱 문제여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사실 그렇다면 한국어 및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따로 제공하면 될 문제 아닌가? 그것이 왜 국적취득과 연계되어야 하는지는 설명불가. 사실 현재 결혼이민자들, 특히 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결혼 이민자들은 현행 국적취득-간이귀화- 제도 속에서도 국적취득이 용이하지 않다. 이는 자신의 어린 외국인 신부들을 통제하려는 남편들 때문인데, 이들은 자신의 도움없이 어려운 국적취득을 무기삼아 이 여성들에게 통제권을 행사하며, 이들의 국적취득을 방해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국적취득을 위해 특정한 프로그램을 거의 2년이나 되는 기간동안 이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더해지면, 무거운 봇짐에 벽돌을 밀어놓고 도와주겠다는 격. 정말 사회통합을 원하신다면, 어르신네들, 그냥 한국어 및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좀 더 잘, 제공하셔요.
    특히, 결혼이민자에 대해서는 필기시험을 면제하고 있어 2년 이상 국내 체류시에 한국 국적 취득이 가능함에 따라 이들 대부분이 한국어, 우리사회이해 등 기본소양이 갖추지 못한 상태로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사회에 정착함에 따라 본인물론, 그 2세까지 학업, 취업 등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 설명회자료 중, 법무부(2008.3.))
  2. 230시간 프로그램 주당 3시간 - 좋다. 100만번 양보해서, 한국어 교육과 사회적응을 위한 프로그램 필요하고 있으면 좋다고 치자. 그러나 법무부가 이야기하는 프로그램 운영사항이 아주 우습다. 결혼이민자의 경우 총230시간의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그런데 절대 매일 수업을 들을 수도 없고, 하루종일 수업을 들을 수 없다. 결혼이민자가 들을 수 있는 수업시간은 오직 주당 3시간. 매주 듣는다고 해도 총 16개월을 들어야 하고 중간에 휴가 등이 겹치면 거의 2년을 들어야 한다. 이건 2년 한국 내 주소지 거주라는 간이귀화조건을 맞추기 위한 것인가? 도대체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생각해봐라. 나 자신도 학원 하나 다니려면 주당 3시간씩 2년은 못다닌다. 지겨워서. 게다가 뭘 배우란 말이지? 한 주 지날 때마다 다 까먹어버리겠다. 빈곤층인 경우가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결혼이민자 가정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일하고 출산하고 가사일하는 와중에 수업을 유예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면 3,4년은 순식간에 지나가겠지. 게다가 남편과 시댁이 비협조적이라면? 10년 지나도 프로그램을 이수하기는 불가능. 그럼 그 기간 내내 국적없이 대한민국에서 살아야 한다. 사이트 가입만 해도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이 나라에서, 공적부조나 사회보장을 받기 위해 기본적으로 국민일 것을 요구하는 이 나라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으라는 거요?
  3. 평가기준은 시간? - 결혼이민자이건 한국국적을 취득하려는 다른 이들이건 정말 천차만별일 것이다. 교육수준도 다양하고, 지능도 다양하고, 삶의 조건도 다양하다. 머리가 좋아서 금방 배울 수도 있고, 직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훨씬 빨리 한국어와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도 습득할 수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좀 더 느리게 걸릴 수도 있다. 근데 모두 230시간? 평가 기준은 오직 시간인가? 법무부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의 기본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4. 결국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족쇄를 추가하는 것일 뿐 - 많은 수의 결혼이주여성들은 한국사회의 빈곤계층과 결혼하고, 이들은 생존을 위해 노동현장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들 역시 대부분 빈곤한 가정 출신어서 본국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이들은 취업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 이 경우 수업을 2년동안 꾸준히 듣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결혼한 남자나 시댁이 그녀들을 옭아매려하는 경우엔 아예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되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봉쇄될 수도 있다. 법무부 설명대로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가 시행된다면 결혼이주여성에게 족쇄를 추가하는 꼴이 될 뿐이다. 결국 교육기회를 얻기 어려운 이들은 국적취득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할 뿐이다. 이게 무슨 사회통합인가?

법무부는 얼마 전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에 대한 전국 방문설명회를 마무리지었다. 지금 지역에서는 한국어 등 프로그램 교육을 해보려는 움직임들이 생겨나고 있단다. 분명 돈이 모이는 곳일테니. 어설픈 제도의 시행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지 상상만 해도 소름끼친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