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시아의 오늘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 문화예술지식인 선언

차별 대신 차이를 존중하는 다문화 사회를 위하여
-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에 즈음한 문화·예술·지식인 선언 
  

지난 11월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과 연천군 청산 일대는 흡사 전쟁터였다. 법무부가 이른바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을 단속한다는 명목 아래 경찰과 합동으로 전에 없이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퇴로를 봉쇄한 채 토끼몰이 식으로 이루어진 이날의 단속 결과, 130여 명이 붙잡히고 많은 이주 노동자가 부상당했다. 그 중 3명은 큰 수술을 요하는 중상을 입었다. 또한 이날 단속은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철저히 무시한 채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한 필리핀 여성노동자는 용변이 급하다며 애원하자 수갑을 채운 채 단속 차량 바로 옆 길가에서 용변을 보게 했는데, 보다 못 한 한국인 동료 직원이 몸으로 가려주었다고 한다. 법무부는 이날 단속 후, “특정 지역에 밀집 거주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들의 법질서 문란 행위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국법 질서의 유지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불법 체류자 본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도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앞으로도 단속을 강행할 것임을 밝혔다. 한겨울을 앞두고 벌어진 이날 사태는 이명박 정권의 이주 노동자 정책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쉽게 짐작케 한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경제 위기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국경은 더 이상 자본의 자유로운 이주를 가로막지 못한다.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경제는 이미 이주 노동자들 없이는 제대로 유지될 수 없다. 최근 들어서는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이주 노동자가 우리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선동에 가까운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러나 누구든지 현실을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이런 견해가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쉽게 이해할 것이다. 그들은 청년 구직자들의 일자리를 꿰차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의 일터는 언제든지 손가락이 잘릴 위험성이 큰 가구공장이며, 독한 화학약품 연기를 뿜어내는 가죽공장이며, 하루 종일 선 채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우리 동네 작은 식당이다. 이번 단속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영세 사업자들 못지않게 정부 또한 이런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도 작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노예허가제’로 비난받는 고용허가제에 대해 개선은커녕 틈만 나면 개악을 시도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9월 25일 발표한 이른바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이 단적인 예로, 그에 따르면 이주 노동자의 최저 임금을 낮추고 사업주가 내던 식대와 기숙사비를 노동자가 부담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과연 국가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결코 올바른 정책일 수 없다. 지난 날 열사의 땅에 가서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인 역사를 지닌 우리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일방적인 이주 노동자 정책을 펼칠 때, 그것이 과연 어떤 식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봐야 한다. 특히 이른바 후진국 출신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은 선진 일류국가를 지향한다는 우리의 청사진 자체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 일각에는 그들을 마치 잠재적 범죄인 양 백안시하는 시선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극히 일부가 저지른 범죄를 두고 마치 그들 전체가 범죄자 집단인 양 차가운 눈길을 보낸다는 것은 문제다. 미꾸라지가 물을 흐린다고 웅덩이의 물을 다 파내 버릴 수는 없다. 우리는 몇 년 전 서울 서래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영아살해유기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사건에 대해 우리 이웃들은 한편으로 그 잔인성에 치를 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결코 프랑스인 공동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성숙한 판단과 태도를 보여주었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조승희 씨가 총기를 난사해 수많은 인명을 살해했을 때, 우리 국민은 마치 죄인인 양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미국인들은 그것이 결코 ‘한국인’ 조승희 씨의 범죄가 아니라며 오히려 우리의 집단적 속죄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추방되어야 할 것은 이주 노동자가 아니라 편견과 몰이해다.

이명박 정부는 ‘불법’ 이주 노동자를 단속하는 것일 뿐이며, 법치국가에서 법을 정당하게 집행하는 게 어째서 문제냐고 말한다. 그들이 과연 자신들이 내세우는 ‘법’에 맞게 단속을 했는지도 엄밀히 따져봐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법대로 할 뿐이라는 언뜻 정당해 보이는 것 같은 발상이 지닌 위험성이다. 우리는 일방통행적인 법치만능주의가 비단 ‘불법’ 이주 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추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칫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마저 같은 방식으로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음을 우려한다.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이주 노동자 문제가 이미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의 의식이 어디에 와 있는지 검증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최근 십여 년 간 급증한 결혼 이민자들을 보더라도, 우리는 순혈주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폐쇄적 민족주의 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얼굴이 까만 한국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엄마를 인정해야 한다. 안산 공단에서 일하는 동남아 출신 노동자가 서래마을 프랑스인들이나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하얀 얼굴의 미녀들처럼 다 같은 우리 이웃임을 인정해야 한다. ‘튀기’들이 과거 미군 부대 주변에서 온갖 차별과 서러움을 받으며 살 때 짐짓 외면하던 감성으로는 ‘한류’ 또한 오래 지속시킬 수 없다. 
  
- 차, 차를 좀 세워/ 길을 가다 보았다/ 연두 빛 고운 바탕에 선명하게도 쓰인/ 베트남, 그 당당한 이름의 붉은 글씨/ .... 그 아래 선전문구/ 절대 도망안감

(박남준, [유린당할 현수막] 중에서) 

타자를 배려하지 않을 때, 말은 쉽게 폭력이 된다. 불행히도 우리는 해방 이후 이제껏 다른 말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언어로만 말하는 법을 배워왔다. 앞으로 전진하자는 말, 앞으로 전진해서 쳐서 무찌르자는 말, 앞으로 전진해서 쳐서 무찔러서 적의 심장에 기어이 태극기를 꽂자는 말..... 그런 말들이 결국 오늘 타자에 대해 ‘집 잘 봄’ ‘도망 안 감’ 같은 말을 당당히 구사하는 터무니없는 배짱을 키워준 게 아니겠는가. ‘다른’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차별 대신 차이를 존중하는 다문화 사회가 우리의 미래요 대안이다. 강요된 일사분란이 힘이던 시대는 진작 지났다.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힘, 즉 세계와 경쟁하는 창조적 상상력은 차이의 다양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1. 정부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강압적인 단속을 중지하라.
1. 정부는 노예제와 다름없는 이주 노동자 고용허가제를 개선하라.
1. 정부는 중국 국적 동포들에 대해서만 재외동포법을 적용하지 않는 차별 조치를 시정하라.
1. 정부는 2009년 1월 1일부터 결혼이주자의 국적 취득 요건으로 한국어 필기시험 통과 또는 사회통합교육 이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국적법 개악 방침을 철회하라.
1. 정부는 다문화 인권 사회를 위한 종합적인 청사진을 마련하라. 


2008년 12월 17일

선언자 일동

  

미술계

고경일(시사만화가), 김민곤(사진작가), 김인규(충남오성교등학교 미술교사), 김장언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김지영(미술), 노순택(사진작가), 류준화(서울민미협), 문미희(미술가), 손문상(시사만화가), 윤석남(미술가), 임흥순(미술작가), 정정엽(미술가), 최민(시사만화가), 홍성담(미술가)

문학계

고명철(문학평론가), 고인환(문학평론가), 공선옥(소설가), 공지영(소설가), 구효서(소설가), 권여선(소설가), 김남일(소설가), 김미월(소설가), 김선우(시인), 김중미(작가), 나해철(시인), 나희덕(시인), 도종환(시인), 명지현(소설가), 문동만(시인), 박기범(작가), 박수연(문학평론가), 박형숙(소설가), 방현석(소설가), 부희령(작가회의), 서성란(소설가), 손세실리아(시인), 송경동(시인), 송경아(소설가), 신현수(시인), 오수연(소설가), 오창은(소설가), 유종순(시인), 윤석정(시인), 윤동수(작가), 이경자(소설가), 이남희(소설가), 이상번(시인), 이세기(시인), 이시영(시인), 이은봉(시인), 이정민(시인), 이재웅(소설가), 이현(작가), 이현수(소설가), 임동확(시인), 장주경(소설가), 전성태(소설가), 정도상(소설가), 정지아(소설가), 정홍수(문학평론가), 하성란(소설가), 하종오(시인), 황대권(작가), 차창룡(시인)

영화계(24)

공미연(다큐멘터리 감독), 권병길(배우), 권해효(배우), 김경형(영화감독), 김민경(청년필름), 김상민(스크린쿼터문화연대 정책팀장), 김유평(프로듀서), 김지훈(영화감독), 김태용(영화감독), 문소리(배우), 민규동 (영화감독), 박찬욱(영화감독), 박철민(배우), 변영주(영화감독), 신동일(영화감독), 심상국(영화감독), 양기환(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 오지혜(배우), 윤성원(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윤형각(문화다양성포럼 집행위원), 윤하(영화진흥위원회 노동조합 사무국장), 이마리오(다큐멘터리 감독), 이종호(프로듀서), 임기화(문화다양성포럼 집행위원), 임순례(영화감독), 장준환(영화감독), 정지영(영화감독), 최진욱(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한석호(문화다양성포럼 사무처장), 한인철(영화진흥위원회 노동조합 지부장), 최영재(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국장)

학계/지식인

강내희(중앙대), 강동일(인권연구소 '창'), 강신성(한남대), 강성윤(이화여자대학교), 강유선(수유+너머), 고미숙(수유+너머), 고봉준(수유+너머), 고병권(수유+너머), 고부응(중앙대), 고정갑희(한신대), 고유경(이화여자대학교), 권용선(수유+너머), 권은영(수유+너머), 김규종(경북대), 김경근(전북대), 김보경(민교협), 김상곤(한신대), 김수자(이화여자대학교), 김수환(이화여자대학교), 김승호(싸이버노동대학), 김세균(서울대), 김연수(이화여자대학교), 김영(인하대), 김용찬(순천대), 김원열(한양사이버대), 김정훈(호원대), 김태환(수유+너머), 김준(동국대), 남지대(서원대), 문경연(수유+너머), 문현아(서울대), 박경태(성공회대), 박노자(오슬로대학교), 박상환(성균관대), 박영균(서울시립대), 박정수(수유+너머), 박태호(서울산업대), 박하순(한국노동사회과학연구소), 배성인(한신대), 백소영(이화여자대), 백승욱(중앙대), 서경석(한양대), 서유석(호원대), 손기태(수유+너머), 손미아(강원대), 손호철(서강대), 심인보(호원대), 양재혁(성균관대), 오김숙이(여성문화이론연구소), 오동석(아주대), 오세철(연세대), 오하나(수유+너머), 유문선(한신대), 유승원(가톨릭대), 이명기(수유+너머), 이민환(부산대), 이선주(이화여자대학교), 이종구(성공회대), 이홍락(한일장신대), 이희경(수유+너머), 임운택(계명대), 원종례(가톨릭대), 장임원(전 중앙대), 전지용(조선대), 정정훈(수유+너머), 조원광(수유+너머), 조효제(성공회대), 조승래(청주대), 진영종(성공회대), 진은영(이화여자대학교), 채만수(노동사화과학연구소), 한대희(호원대), 한홍구(성공회대), 홍세화(언론인), 황희선(수유+너머), 차옥숭(이화여자대학교), 최갑수(서울대), 최무영(서울대), 최순영(수유+너머), 최정옥(수유+너머), 최진호(수유+너머)

음악계 등 문화계

노래공장, 박준, 안연정(문화로놀이짱), 연영석, 윈디시티 김반장, 지민주, 킹스턴루디스카

(12월 16일 오후 4시 현재 선언 참가자 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