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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꿈을 만나다

경제위기의 희생양 이주노동자

                                                                                                                   이 세 기

일이 없는 이주노동자


누구에게나 고비가 있다. 험난한 세상의 파고를 넘는 일이 어찌 수월하겠는가. 이주노동자도 예외는 아니다. 이역만리에서 가족과 헤어져 홀로 고된 이주노동을 견디며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넘는 일이 녹록지만은 않다.


아밀라(26세, 스리랑카)씨는 요즘 조바심이 부쩍 늘었다. 구직기간 만료가 2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재취업 기간 내에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백방으로 구직을 위해 돌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의정부, 평택, 원주 등 안 다녀 본 곳이 없다. 웬만한 고용지원센터는 거의 찾아 다녔지만 번번이 헛걸음이 되고 말았다. 어떤 날은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고용지원센터에서 대기도 해보았지만 일거리가 없어 되돌아와야 했다. 구직을 위해 친구 집이나 공장기숙사를 더부살이로 전전하는 것도 이젠 눈치가 보여서 힘들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머니 사정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물로 허기를 채우는 일이 많아졌다. 체중은 점점 줄고, 가끔씩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고향 생각이 간절하다. 식구들이 눈에 어른거린다. 하루 빨리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는 얼마 전에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나왔다. 몇 달 동안 일거리가 없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이주노동자가 네 명이 있었지만 일감이 없어서 기계를 돌리는 날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상적인 임금을 받지 못했다. 겨우 한국인 노동자 몇 명만이 일을 하고 이주노동자는 기숙사에서 일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측에 사업장을 변경해 달라고 할 수 있는 처지도 못 됐다. 구직변동을 하면 근로자의 귀책사유로 계약연장은 물론 그나마 3회 사업장 변동의 기회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공장에 일거리가 없자 회사측은 이주노동자 전원과 근로계약해지를 했다. 말이 고용해지지 일방적인 해고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이주노동자인 자신의 신분으로 어디다 마땅히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직장에서 나온 후, 그는 악몽을 꾼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으로부터 쫓기는 꿈이란다. 캄캄한 절벽 끝에 서 있거나, 컴컴한 벽과 벽 사이에 갇혀 있는 꿈도 꾼다. 구직기간이 좁혀 질수록 불면증은 더욱 심해졌다.


어쩔 수 없이 미등록 체류자가 되어 단속과정에서 쫓기다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동료 이야기가 들려왔다.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생활도 어려워지자 고향으로 귀환하는 동료들도 속속 늘어났다.



그는 요즘은 취직도 어렵지만 도산하는 공장이 많아서 3회 사업장 변경 규정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터에 구직기간이 2개월로 제한되어 있어서 대다수 이주노동자는 이래저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외국인도 사람이잖아요, 우리도 가족 있고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이주노동자는 현행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개월 안에 재취업을 못하면 미등록 체류자로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이주노동자에게 2개월간의 구직기간 제한 규정으로 인하여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의 제한적인 법률 규정이 구조적으로 미등록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은 구직기간을 늘려 주기를 희망한다. 요즘처럼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구직기간을 늘리지 않는다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불법체류자가 되거나 강제출국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실직기간에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임시직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밀라 씨는 구직기간을 지키는 것도 힘들지만 그나마 임시직이라도 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임시직으로 일을 하면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하는 것이 돼 비자를 상실할까봐 그렇게 못한다. 그는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살길이 막막하다.


“우리도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잖아요.”


그는 한국의 물가에 비해 자신들이 벌고 있는 임금이 결코 많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물가가 싼 아시아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고국의 기준으로 임금을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고국에서의 가족 생계와 한국에서의 생활비를 쓰고 나면 자린고비도 모자랄 판이다.


그나마 번 돈은 송금했고, 벌어놓은 돈이 없는데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고 말한다. 구직기간이 길어지면 그동안 번 돈까지 까먹기 일쑤고 생활도 막막해진다. 임시직이라도 할 수 있게 허용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지금이 인생 최대의 고비라고 말한다. 아밀라 씨뿐만 아니라 대다수 이주노동자에게 요즘은 이래저래 사면초가다.



희생양이 되는 이주노동


경제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는 이주노동자에게 더욱 심각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현실의 파고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공장 문을 닫거나 휴업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해고와 함께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연간 1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를 받아 들였다. 하지만 최근 세계경제의 경기침체 여파로 국내의 생산활동이 침체되자 이주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하고 있다. 일자리는 제한되어 있고 이주노동자는 넘쳐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있는 일자리조차 같은 이주노동자끼리 경쟁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그야말로 재취업 전쟁을 겪고 있는 것이다.


                                    ⓒ 이상재



경인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오양가 씨(24세, 몽골)는 구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하소연을 했다. 벌써 5주째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그녀는 남성 구직자에 비해 여성 구직자의 경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어쩌다 친구들을 통해 임시직 제안이 오지만 할 수 없다고 한다.


“일하면 쫓겨나야 하잖아요.”


현행 고용허가제에 위배가 되다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차라리 비자가 없는 것이 더 나아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차라리 미등록자가 되어 4,50만 원 짜리 임시직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고환율로 송금액마저 반으로 줄었다. 이래저래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불만도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희생양이 아니에요.”


그녀 역시 최근 구직기간 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베트남 이주노동자 얘기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단다. 이역만리에 와서 외로움과 고된 이주노동을 견디며 소박한 귀환을 꿈꾸지만 자꾸만 멀게만 느껴진다.


그녀는 이주노동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고향의 들판처럼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최저임금을 삭감하고 수습기간을 늘리는 내용으로 최저임금법 개악이 진행 중이라는 말을 듣고 혀를 내두른다. 적은 임금을 또 깎고 음식비는 물론 기숙사 비용까지 이주노동자에게 전가시킨다는 말에 어이없어 했다. 최저임금법이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임금지급 시 숙박비를 공제하고 지급하는 행위가 임금전액지급원칙에 위반하는 위법행위이기 때문이다. 국적은 달라도 노동의 권리는 같다는 보편적 인권을 정부가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UN인종차별철폐협약을 위반하고 있는 명백한 인종차별 행위다.


“그거야 말로 차별이죠.”


일할 때는 빨리 빨리를 재촉하는 한국의 문화가 한 때는 배워야할 문화처럼 느꼈지만, 쓸모가 없어지면 재빨리 갈아 치우는 것을 보면서 할 말을 잃는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인격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녀는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보는 시각이 잘못 되었다고 꼬집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불쌍하다고 해요.” “일하러 온 사람을 왜 불쌍하다고 하는지, 노동하는 것이 왜 불쌍한지 모르겠어요.” 아시아의 이주노동자를 동정의 시각에서 보는 것도 못 마땅하지만 걸핏하면 감정을 상하게 하는 발언으로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쓰다 버리면 그만인 기계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못 사는 아시아의 나라에서 온 기계라서 불쌍한 것인가요?”


일을 시킬 때는 가족처럼 간도 쓸게도 다 빼 줄 것 같이 대하다가 일이 없으면 가장 먼저 버리는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것도 한국 기업의 행태라고 꼬집는다. 노동력을 팔았다고 해서 인격까지 판 것이 아닌데도 한국 사회는 인격까지 예속하는 이상한 나라인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단순한 기계 소모품이 되어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리는 것은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이주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경제논리를 넘어서 인간적인 수모와 억압의 또 다른 기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이주노동자를 노동권을 가진 노동자로 보지 않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시각이 깔려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내국인으로 대체하는 경우 근로자 1명 당 1회 12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노동부의 탁상행정이야말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아시아의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고도 반이주노동자적인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인종주의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경기한파로 해고가 빈번하고 임금조차 삭감할 위기에 처해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이중삼중의 차별은 한국 사회의 인권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계인권선언’에는 “모든 사람은 일할 권리,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일할 권리, 실업상태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23조)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은 “이주노동자의 체류 또는 취업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인하여 이 원칙으로부터 파생되는 어떠한 권리도 박탈당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25조 3항)고 명시하고 있다.



* 이 글은 <삶이 보이는 창>68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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