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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꿈을 만나다

결혼이주문화와 인천의 변화 그리고 한국사회 국경 없는 결혼이주 몇 년 전 방문한 방콕(Bangkok)에서 느낀 첫인상은 부러움이었다. 도시의 활력에 새삼 놀랐기 때문이다. 세계 각처에서 몰려드는 배낭족의 천국이라는 방콕의 방람프(Banglamphu) 거리의 인파는 그야말로 젊은 에너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도시가 다이내믹한 데는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의 혼재도 한몫한다는 것을 깜냥으로 느꼈던 것이다. 최근 두 번째로 방콕을 방문하면서 새삼 느낀 것은 실제로 ‘미소의 나라’라고 불리는 태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실 인도차이나반도의 오랜 전통은 웅숭깊다. 모든 강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메콩강(Mekong River)을 주강으로 한 버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은 일찍이 생명의 젖줄로 발원하여 오랜 불교문화의 역.. 더보기
밍굴라바, 뚜라 [이주, 꿈을 만나다] 밍굴라바, 뚜라 이세기 모든 것은 지나간다 분주한 도심 위로 구름이 그림자를 이끌며 흘러간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도, 목마름도, 그리고 또 삶도, 고통도 모두 지나간다. 뚜라를 만나러 가는 길에 문득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아마도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묻는 방식이 아닐까. 그와 수차례 통화한 후에야 비로소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부천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짧지 않은 시간에 몇몇의 아시아계 이주노동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얼마나 됐을까, 구부정하게 키가 큰 그가 인파 속에서 다가왔다. 뚜라(U Thura). 그의 나이 39세. ‘버마행동(Burma Action Korea)’ 대표. 가족의 품을 떠나 오늘날 ‘미얀마.. 더보기
쉼터로 쫓겨 온 여성들 쉼터로 쫓겨 온 여성들 이세기 한밤중의 탈출 어디선가 박하(薄荷)향이 난다. 후에(베트남, 23세)가 퇴근길에 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손에 든 게 뭐냐고 물으니, 박하란다. 무엇에 쓰려고 구했냐고 하니, 약으로 쓰려고 한단다. 누가 아프냐고 했더니, 후에는 머리를 가리키며 함께 방을 쓰는 친구가 “생각이 많아서 아프다”고 했다. 박하로 즙을 만들어 먹으면 괜찮단다. 우울증 치료에 약효가 있는, 고향에서 해온 일종의 민간요법이란다. 병원에 가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박하즙을 먹으면 괜찮다고 한다. 어디에서 그렇게 많이 구했냐고 물으니, 화원에서 구했단다. 후에는 결혼이주여성이다. 한국 이름은 후에의 한자식 표기인 꽃 화(花) 자를 써서 이화(李花). 하노이 인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당시 나.. 더보기
목소리 없는 목소리들 목소리 없는 목소리들 이세기 짜오위의 하루 짜오위(21세)의 하루는 정오가 지나서 시작된다. 공장에 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부모와 다르다. 식구가 함께 아침밥을 먹은 지도 오래되었다. 밤새 인터넷을 하다 새벽 5시쯤에 잠이 든 그는 2시쯤 느지막하게 일어나 다시 인터넷에 접속한다. 그리고는 게임과 메신저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4년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짜오위는 변한 것이 없다. 하루 일과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 사이 한국어를 배운 것도 아니고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다. 대만식 교육을 하는 화교 학교에 입학했지만 세 달 만에 학업을 포기했다. 이유는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거의 매일 싸웠어요. 놀림을 받는 것도 싫었고,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못했어요. 왕따였어요... 더보기
파트타임 인생 파트타임 인생 이세기 최저임금? 이곳에는 없어요 봄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골목길에 들어서면서 몇 번 하늘을 쳐다보았다. 황사가 드리워진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꽃은 언제 기별이 오려나? 아마도 꽃이 피면 웅크린 마음이 조금은 환해질 것이다. 돈(37세) 씨의 집은 다가구주택이 닥지닥지 붙은 골목에 있다. 골목 입구 담벼락에 이파리가 떨어진 앙상한 개오동나무가 삐죽하게 서 있다. 초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나무는 시원한 이파리를 보일 것이다. 2층으로 향하는 다가구주택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문을 열자 손바닥만 한 부엌이 나온다. 그리고 겨울을 함께 난 장미 화분 하나가 놓여 있다. 때마침 부인 린(39세) 씨가 음식을 준비하는 중이다. “마부하이.” 내가 타갈로그어로 인사를 하자 그는 곧바로 “안녕하세요.. 더보기
당신, 꿈에 와주세요 당신, 꿈에 와주세요 이세기 실라 씨의 눈물 실라(44세) 씨는 한국에서 17년간 여성노동자로 살았다. 처음 5년 동안 무려 열여섯 군데의 공장을 전전했고, 최근까지 다닌 공장에서는 10년간 검사반에서 일했다. 철새도 아닌 그녀가 열일곱 군데의 공장을 다닌 사연에는 사뭇 눈물이 배어 있다. 이유인즉 그녀의 아들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들은 올해 공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은 그런 문제쯤 아무 일도 아니지만 당시 돌을 막 지난 아이의 의료보험증을 만들기 위해 선택해야만 했던 시름겨운 신산한 삶이었다. 그녀는 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비참했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남편과 3년 조금 넘게 함께 살았는데, 백혈병으로 갑작스럽게 죽었어요. 그때 우리 아이가 17개월이 막 지난 무렵이었어요.” 19.. 더보기
굿다하 피스! 굿다하 피스! 이세기 한밤의 난장 토론 파키스탄 이주노동자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모임이 있는데 동석을 묻는다. ‘좋다’고 답한 후, 찾아가는 공단 길이 어둠으로 가득하다. 공단 초입에 있는 이마트는 불야성이다. 꼬리를 무는 차량 행렬을 뒤로한 채 공단으로 들어가자 밝음과 어둠의 착시현상이 급작스럽다. 터널처럼 어둠뿐인 길에는 공장 기숙사로 돌아가는 이주노동자 몇몇이 어둠을 뚫고 걸어간다. 추위 탓인지 귀마개에 자라목이다. 동지(冬至)가 가까워져서인지 초저녁이 한밤중 같다. 회합 장소인 공장 기숙사에 들어서자 카오스처럼 벗어놓은 얽히고설킨 신발이 자못 절경이다. 저것이 바로 삶이라면 그야말로 극적이다. 라호르에서, 카라친에서, 이슬라마바드에서 신발이 끌고 왔을 이주의 길이 불현듯 궁.. 더보기
나는 누구인가?(2) 나는 누구인가? (2) 이세기 무지개 슬픔, 이주노동 늦은 밤에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하킴이 단속에 걸려 잡혔다는 내용이었다. 만난 곳은 공교롭게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있는 보호실이었다. 그는 보호실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의자에 앉으면서 “괜찮아요”라는 말을 건넸다. 오랜만에 본 그의 웃음이 여전히 싱그럽다. “야간 근무를 하고 있는데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들이닥쳤어요. 아마 누군가 신고를 받고 온 모양이에요.” 그는 한 공장에서만 12년간 일을 한 베테랑 기술자이기도 하다. 공장에서도 그가 없으면 기계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그를 신뢰했고 전적으로 일을 맡겼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잡혀서 정리도 못하고 가게 됐네요.” 단속에 잡혀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더보기
나는 누구인가?(1) 나는 누구인가? 이세기 이주노동자, 시인이 되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하킴(32세)은 한국이 낯설지 않다. 그가 한국에서 맞는 여름은 올해로 열다섯 번째다. 그에게 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에게는 ‘한국의 겨울 날씨는 고춧가루만큼 맵고, 한여름은 방글라데시보다 더 덥다’고 엄살을 떨 줄 아는 익살이 있다. 가끔씩 고향 인근의 시원스럽게 흐르는 강에 몸을 던져 텀벙 들어가는 꿈을 꾸지만 이젠 그 꿈마저 가물가물하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청년기를 보낸 그다. 이주노동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고향 포리풀(FARIDPUR)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994년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올 때까지만 해도 이주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고향에 의류공장을 세우는 꿈을 꾸었다. 거개의 아시아.. 더보기
시민 K씨 시민 K씨 이세기 귀화자의 비애 그를 시민 K씨라고 부르겠다. 시민 K씨의 나이는 38세. 한국에 들어온 지 7개월째다. 그에게는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딸과 이제 막 백일이 지난 딸아이가 있다. 그는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났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40여 가구가 벼를 심고 농사일을 하는 촌이다. 그곳은 군산에서 태어난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때 가족을 이끌고 두만강을 넘어 길림(吉林)을 거쳐 정착한 곳이다. 성자촌에서 정착한 가족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한국으로 오기를 포기하고 중국 내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 농사일을 하며 살았다.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상급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녕안시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것이 가족과의 이산(離散)의 시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