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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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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 칼럼]다문화 ‘불통’


씁쓸한 얘기부터 해야겠다. 인천 가좌동에 있는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를 위한 일요치과진료소와 도서관이 문을 닫게 됐다. 1회 1000원으로 무한정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일요치과병원에서는 일요일마다 30명 이상 줄을 서서 진료를 받았다. 또 도서관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문화 공간으로 나름 자리를 잡아왔다. 그런데 최근 경제적 이유로 건물주가 공간을 비워달라고 요구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같은 공간에 있던 다중시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축소되는 안타까운 처지에 이르렀다.

현재 인천에만 3만여 명의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이 우리 이웃이 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결혼 이주민의 경우 8000명을 넘어서고 있고, 전국적으로 해마다 결혼 이주가 전체 결혼자의 10%선을 넘고 있다고 볼 때, 인천 역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이 급변하는데도 이주민을 위한 각종 제도나 정책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ㆍ결혼 이주 느는데 市정책은 답보


인천은 이주 도시다. 하와이와 멕시코 유카탄반도로 떠난 노동이주가 제물포에서 시작됐다. 또한 화교를 비롯해 조계지에 많은 외국인이 살았다. 오늘날에는 송도국제도시를 비롯해 경제자유구역이 확장되면서 인천은 바야흐로 신(新)이주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도시로서 ‘명품도시 일류도시’를 외치는 인천이 과연 그에 걸맞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묘연하다.

결혼 이수제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시점인데도 결혼 이주여성을 위한 통합적이며 지속적인 보수교육과 직업 재활 등의 정착프로그램은 마련돼 있지 않다. 기초적인 한국어 교육이 전부다. 다문화교육 전문가가 양성되었지만 급작스럽게 추진된 감이 없지 않아 그 전문성 또한 의문 투성이다. 다문화교육이나 한국어교육이 민간단체와 대학이 연계돼 지역사회의 인프라로 구축되고 있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게다가 얼마 전에 인천지역 초등학교 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인종 선호도 조사’에 의하면 놀랍게도 백인과 흑인에 비해서 아시아인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아시아인이면서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반아시아적인 정서가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셈이다.

ㆍ‘다문화 소통’ 말보다 행동 필요


상황이 이러매 이주민은 이래저래 다문화사회 선전물의 장식으로 등장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선전만 요란할 뿐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각 지역 지자체를 중심으로 범람하고 있는 각종 다문화축제는 어딘가 모르게 이주민을 동원하고 대상화하는 ‘전시 다문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야말로 인종 전시장이나 다를 바 없는 동원된 전시문화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생색과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요란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게 허사가 아니다.

결혼 이주민의 경우 사회 참여의사가 높다. 각종 실태조사에 의하면 이주민은 젊고 패기에 차 있으며 문화적 모험과 진취성이 남다르다. 그러나 인천은 이들을 위한 통합적인 다문화 공간 하나 아직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주 도시답게, 국제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선전이 공염불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천은 지금부터라도 다문화 정책을 점검하고, 시설을 확충하며 이에 따른 조례 등을 조속히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인천만큼 개방적이고 다문화적 요소가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개방된 곳도 없다. 서로 다르지만 힘이 넘치는 다양성을 기저로 하는 쌍방향의 문화적 소통은 무엇보다도 시대정신에 맞는다. 문화적 다양성은 공존과 존중이 상통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이웃인 이주민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 욕구를 지역 사회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궁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세기 시인>

입력 : 2009-09-01 03:57:59수정 : 2009-09-01 04: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