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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

다문화사회,이주외국인 인권


[인권기획 ④] - 다문화사회, 이주외국인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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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이래 한국은 급격히 다문화사회로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다문화사회에 걸맞은 성숙된 인권을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 다문화사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부·민간 차원의 노력 뒤엔 여전히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공존하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가 발표한대로 한국은 여전히 ‘대표적인 인종차별국가’다.

< 이승한: tjhoho81@knou.ac.kr   등록일: 2009-01-19 오전 9:35:21   제1525호(2009-01-19) >
 
▲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반대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한 이주노동자 
최근 다문화에 대한 관심 증폭

지난해 11월 12일, 경기도 연천군 청산 일대와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에서 경찰이 ‘토끼몰이’식으로 130명이 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를 강제 연행했다. 즉각 시민인권단체들이 정부의 반인권적인 행위를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마석가구단지는 사건이 있기 1년 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방문했던 곳이다. 그 자리에서 이 후보는 다문화가정 및 이주노동자들과 만나 불법체류자들의 인권문제를 긍정적으로 거론했었다. 시민단체와 이주외국인들은 이명박 정부의 이주외국인 인권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에 분노했다.
같은 달 서울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가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다문화사회에서 이주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에 관한 국제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는 국가인권기구 간 효과적인 국제협력지침을 담은 ‘서울가이드라인’이 채택됐다. 서울가이드라인에는 송출국과 유입국의 국가인권기구가 국제협력을 통해 이주외국인의 인권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담겨졌다.
이번 행사에서는 무엇보다 이주민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강조됐다. 즉, 이주외국인을 자국 내 일자리를 빼앗는 침입자 또는 사회적 불안요소나 값싼 노동력의 대상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자국민과 동등한 수준에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같은 달 이주외국인의 인권을 놓고 한국사회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호한 태도는 한국사회의 인권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도권 밖에서 고통 받는 미등록외국인

담티탐 흐엉(베트남, 27세) 씨는 지난 2006년 한국 담양에서 농촌 남성과 결혼했다. 이후 남편의 성적학대와 시댁의 의심을 견디지 못하고 7개월 만에 집을 나와 지금은 단속반을 피해 다니는 처지가 됐다. 그녀는 “지금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부모님이 사실을 알고 걱정할까 봐 그러지를 못한다”고 말했다.
그레고리오 피게로아(필리핀, 30세) 씨는 2004년 한국에 온 5년차 중고참이다. 그는 2007년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당시는 불법체류 상태였기 때문에 강제추방에 대한 두려움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오른쪽 다리에 일부 괴사가 진행된 상태로 고통을 참고 버티는 중이다. “단순한 부상이 이 지경까지 확대될 줄 몰랐다”며 한숨짓는 그는 현재 일정한 직업 없이 안산 일대에서 날품팔이로 전전하고 있다.
비사드 레티 모비(파키스탄, 30세) 씨는 전에 일했던 공장에서 2년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는 “임금을 받으러 가면 사장이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뿐 확답을 주지 않는다”며 “일을 시킬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불법체류를 신고하겠다며 은근히 협박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주노동자가 집회도중 경찰에게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미등록외국인의 인권은 먼 이야기?

2008년 말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모두 110만명에서 13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90년 대 초 5만여명에 불과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증가한 수치다. 인천에서 이주민을 위한 문화공간 ‘오늘’을 운영하는 인권운동가 이세기 시인은 “귀화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국내 거주 외국인은 최대 200만명까지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는 67만명 정도다. 여기에는 다시 22만명에 이르는 미등록이주노동자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는 존재들이 바로 미등록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외국인여성이다.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정부의 이주외국인에 대한 정책이 주로 법의 테두리 내로 한정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세기 시인은 “정부가 이주외국인 권리를 위한 제도개선에 나서면서도 미등록외국인에 대해서는 반인권적인 추방정책을 병행하고 있다”며 “이러한 탄압이 존재하는 한 우리사회가 정당하게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크다. 특히 경제난이 가중된 최근에 들어서는 “자국민을 위한 대책마련도 시급한 판에 불법체류자까지 보살펴야 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몇몇 시민연대는 이주외국인에 대한 지원과 인권보장에 앞장서는 시민단체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이주외국인의 인권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제도적 차원의 개선해야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주외국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제도권 밖에서 보호 받지 못하는 외국인의 인권에 먼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합법적으로 이주해온 외국인마저 미등록상태로 전락하게 만드는 법의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용허가제도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허가된 3년 기간 동안 3회 이상 사업장을 바꿀 수 없는 독소조항이 있다. 이주노동자 아눌라(스리랑카, 29세) 씨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후 3일 만에 계약한 공장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후 두번째 취직한 공장은 3개월 만에 불이 났다. 세번째 회사에선 관리자에게 폭행을 당해 회사를 옮겨야 했다. 그는 결국 1년 3개월 만에 원치도 않았던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됐다. 현실적이지 못한 법으로 인해 정부가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주외국인과 관련해서는 국적법이 큰 문제다. 현행 국적법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모두 2년 동안 한국 거주가 인정돼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결혼해 한국에 온 외국 여성들이 2년간 무국적 상태에 있게 되면서 한국 남성들의 가부장적 행위와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결국 지난 2004년,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등으로 인해 이혼했을 때는 자녀양육 목적으로 국적취득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혼이주여성을 보호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제도를 통합 관리하는 기관의 부재다. 현재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업무는 분야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가족부, 여성부, 노동부, 법무부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인권운동가들은 일원화된 정책을 위해선 이민청과 같은 단일기관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정부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바 있는 우리대학 곽노현 법학과 교수는 “새로 이주민을 위한 행정기관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나 국무총리실이 중심이 돼 관련기관을 강도 높게 조정할 수 있는 회의체 정도만 갖춰져도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곽 교수 또한 현재의 분산된 관련기관이 업무에 비효율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 했다.
 
▲ 일선 학교에서의 다문화사회 교육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환상에서 탈피해야

제도적 측면 못지않게 한국인이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문제다. 현재 한국 내에서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존재는 주로 아시아인이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미국이나 유럽을 대하는 태도와 아시아, 아프리카를 대하는 태도에 이중 잣대를 들이댔다. 이세기 시인은 “미국이나 유럽인에게는 추방을 할 때도 추방예고를 하면서 아시아나 아프리카와 같은 제3국인에게는 강제추방정책을 쓰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결혼으로 귀화한 제3국 출신 결혼이민자일 경우 남녀를 막론하고 가족들을 국내로 초청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아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차별은 한국사회를 인종차별국가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다. 따라서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일선 학교에서 다문화사회에 대한 교육과 인권교육이 필요하고 결혼이주민의 남편과 가족에 대한 교육은 물론, 대학에서의 다문화에 대한 교양교육, 법률 개정 등 다양한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바다.
이에 더해 단일민족국가에 대한 환상이 그릇된 순혈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종현 평택대 다문화가족센터 책임연구원은 “현재 한국의 성씨 274개 중 귀화 성씨는 136개일 정도로 이제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신화에 불과하다”면서 “그럼에도 한국인 스스로 순혈주의 사고를 강요하는 관행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최근 법무부가 시행하려는 한국국적취득을 위한 사회통합프로그램이수제도도 민족동화정책의 연장선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사회 전반의 대안 노력 나올 때

인권운동가들은 현재 민간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주외국인에 대한 인권 노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민간단체의 대부분이 개신교나 가톨릭과 같은 종교 단체에 국한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인권이 문제가 되고 있는 대부분의 이주외국인은 동남아국가 출신으로 이들은 개신교나 가톨릭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민간단체의 지원활동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주외국인이 상당하다는 주장이다. 이세기 시인은 “종교단체의 활동에는 어쩔 수 없이 선교의 의미가 개입된다”며 “사실상 국가지원 속에 이뤄지는 이런 합법적인 활동에 대해 여태껏 종교라는 이유로 비판적인 자정노력이 전무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주외국인에 대한 문제를 이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 지원 아래 다문화사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대학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선도적인 위치에 서 있는 대학이 평택대다. 평택대는 지난 2006년 교육과학기술부의 특성화육성 사업대상에 다문화가족지원이 포함되기 전부터 다문화가족과 이주노동자에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평택대 다문화관련연구의 중심에는 다문화가족센터가 있다. 평택대 다문화가족센터의 특징은 주로 한국인에 대한 다문화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김범수 다문화가족센터 소장은 “미국은 민족동화정책에 실패한 후 내국인이 먼저 의식 변화를 하지 않고는 결코 이주외국인을 포용 시킬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면서 “한국도 스스로를 먼저 의식 변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이양되는 길”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다문화가족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는 대학은 평택대를 포함해 20여개가 있다. 이밖에도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전국에 80개가 마련돼 있는데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를 100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인 지원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가 이주외국인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포용자세다. 이세기 시인은 “한국이 이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해 불러들인 이상 한국사회나 경제, 문화에 기여한 측면을 생각해 장기 거주자를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곽노현 교수도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제도권에서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양산되는 원인을 찾는 일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적어도 이러한 보장이 없는 한 우리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화와 국제화는 허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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