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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

예술엔 인종의 벽 없는데 한국은 왜 그들을 떠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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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엔 인종의 벽 없는데 한국은 왜 그들을 떠미나
 김지환기자 kjh1010@kyunghya

 

ㆍ‘인천판 미누’ 작가 범 라우티 등 이주노동자 예술인 잇단 추방에 들끓는 지역사회

인천판 ‘미누’로 불리는 네팔 출신의 이주노동자 동화작가 범 라우티(43)의 강제추방에 지역사회가 들끓고 있다. 인천에서 시인으로 등단한 하킴(32·방글라데시)을 비롯해 범 라우티까지 잇달아 강제추방 당하면서 “인천, 나아가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발전에 공로가 큰 이주노동자들을 선처해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범 라우티 한국 최초의 이주노동자 동화작가로 작품성 인정 받아

법무부는 지난달 28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지내오던 범 라우티를 인천공항을 통해 네팔로 강제추방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범 라우티는 1997년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땅을 밟은 뒤 1999년 2월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 된 한국최초의 이주노동자 동화작가다.

범 라우티는 2006년 인천 계간 문예지 <작가들>에 시를 발표한 뒤 2007년 창작동화 <돌 깨는 아이들>을 발표해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해왔다. 이 동화집은 올 7월 인천문화재단이 뽑은 ‘2009 인천우수도서’에 선정될 만큼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국내서 작가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앞서 국내 최초로 이주노동자 작가로 등단한 하킴 역시 범 라우티 못지않은 활발한 활동을 벌였지만 결국 지난 6월 방글라데시로 강제 출국됐다.

하킴 계간지 통해 등단
정기 詩 낭송회등
왕성한 활동하다
지난 6월 추방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94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인천 가좌동 공장에서 12년 동안 일해온 하킴은 기간 만료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 됐지만 단속을 피해 야간근무를 하면서도 틈틈이 창작시를 발표해 왔다.

하킴은 계간 문예지 <작가들>을 통해 정식 등단한 뒤 줄곧 시를 발표하고 정기적으로 시낭송회도 가졌었다. 인권운동가이자 아시아이주문화공간 ‘오늘’ 대표인 이세기 시인은 “하킴은 누구보다 뛰어난 감수성을 자랑했고 문학적인 역량도 국내 여느 작가보다 더 대단했다”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다국적 밴드 ‘스탑크랙다운’에서 보컬을 맡았던 미누를 비롯해 각국의 이주노동자들이 미술, 음악, 문학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여주며 국내 문화발전에 기여해 왔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단속이 날로 심해지면서 이들이 대외적인 문화예술활동을 펴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여전히 ‘노동력’에 편협하게 머물면서 이들이 예술적 재능과 역량을 펼 기회는 점차 줄고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영 사무처장(41)은 “정부가 다문화사회를 강조하며 갖가지 행사를 열지만 정작 이주민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없다”며 “새 정부들어 2005년부터 진행하던 이주민 사업까지 중단한 것만 봐도 앞으로 이주민에 대한 입지는 더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사무국장(37)은 “이주노동자 신분이지만 한국처럼 개인의 기회와 재능을 원천적으로 막는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문화로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면 이들에게 어느 정도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 권수진 사무관은 “최근 이주노동자 추방에 대해 비판적 여론이 있는 것은 알지만 다양한 시각이 있는 사안인 만큼 뭐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지환기자 kjh1010@kyunghyang.com>
입력 : 2009-11-02 05:01:00수정 : 2009-11-02 05: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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