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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

'미누 추방' 야만사회

[미추홀 칼럼]‘미누 추방’ 야만사회
[경향신문] 2009년 10월 20일(화) 오전 05:00   가| 이메일| 프린트

나의 벗 중에 이주노동자가 몇 있다. 그들은 대개 솔직하고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인 우리의 젊은 이웃이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하킴도 나의 벗, 우리 이웃이었다. 하킴은 16년 동안 인천 가좌동에서 전자 기판을 만드는 기술자로 일했다. 산업연수생으로 와서 일을 하다가 미등록자가 된 그는 청춘을 오로지 한국의 이주노동자로 보냈다.

그런데 그에게는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늦은 시간 야간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시를 썼다. 문예지에 시를 실어 등단하기도 한 그는 일이 끝난 주말이면 아시아문학 낭송회 등을 다니며 시낭송을 했다. 이주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느낀 사랑과 비애가 그의 주요한 노래였지만, 때로는 이방인을 보는 한국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시의 주제가 되었다.

가령 그의 시 <인생의 노래>에서 ‘피부가 까맣거나 하얗거나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그 누구 그 어디서라도 나에겐 다르지 않네/ 사람 피는 모두 빨갛고 우리는 모두 한 사람에게서 왔네’라며 세상을 향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그는 강제추방반대 집회에 갔다 온 뒤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피는 다 같이 빨갛잖아요.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피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의 노래에 때론 마음이 미어졌다.

이주노동자는 다정한 우리 이웃

그런 그가 야간작업 도중 출입국 단속에 걸려 추방당했다. 하킴이 추방되기 전에 출입국 보호실에서 잠시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한국생활을 기억하는 대목에서 가슴을 데우는 말이 있었다. “눈을 감으면 가좌동 거리며, 다녔던 식당, 함께 살았던 이웃 주민들이 생각이 나요.” 하루도 빠짐없이 한 공장에서만 12년 동안 일을 한 그는 우리와 함께 생활한 다정한 이웃이었다.

하킴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프레스에 손가락이 수없이 잘리고,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는 나라, 수개월 동안 임금체불이 되어도 임금정산을 하지 않고 폐업신고를 하고 문을 닫아 버리면 그만인 나라, 사업장에서 폭행을 당해도 묵묵히 참아야만 되는 나라가 아니었을까? 사업주의 고용해지에 의해 미등록자로 전락하거나, 구직기간이 2개월로 제한되어 있고, 3회 이상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는 현행 고용허가제로 인하여 수없이 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양산되는 현실이 바로 한국 사회의 자화상은 아니었을까?

지난 해 1월부터 올 1월까지 구직기간 제한 때문에 체류자격을 상실한 이주노동자가 2448명이나 되는데도, 오히려 문제의 근원을 법적 미비에서 찾지 않고 어처구니없게도 이주노동자의 개인적인 취업역량 부족으로 내몰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주노동자에게는 권리를 제한시키고 사업주들의 권한만 보호하는 위선적인 제도임이 지난 5년 동안 여실히 증명된 현행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은 폐기되지 않고 있다.

고용허가제 독소조항 없애야

2008년부터 올해 5월까지 약 4만200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추방됐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단속된 이주노동자들의 절반 가량이 ‘사복 차림의 단속반’에게 무작정 잡혀갔고, 게다가 약 40%는 단속반이 신분증 제시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권후진국답게 한국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악랄한 토끼몰이식 강제추방을 일삼는 반인권적인 야만사회로 전락했다.

18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록밴드 ‘스톱 크랙다운’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던 네팔출신 미누와 시인 하킴의 강제단속에 의한 추방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국적 중심의 근대적 시민권 개념이 오늘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가를 따지기 이전에, 분명한 것은 미누와 하킴이 우리의 시민으로 이웃이 되어 함께 살아온 것은 ‘불법’이 아니라, 양심적이고 성실하게 노동하면서 살았던 우리의 ‘이웃’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세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