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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

[시론]이주민 인권과 인종차별

[시론] 이주민 인권과 인종차별

이세기 시인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도를 넘어섰다. 얼마 전 부산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주 여성에게 목욕탕 출입을 금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업주는 “외국인은 물을 더럽힌다”며 “에이즈 감염 위험 때문에 외국인이 들어오면 단골손님이 떨어져 나간다”고 출입을 막았다. 이 기막힌 사건은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차별을 당하는 대상이 주로 아시아계 이주민이란 데 있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난한 아시아에서 온 결혼이주 여성이기 때문이다.

2005년 이후 국제결혼 이주가 급증하면서, 아시아계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은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일본․싱가포르․대만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아시아 국가에 대한 한국인의 인지도는 낮다. 물론 이는 물질 풍요를 누리는 한국사회의 발전과 맞물려 있다.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 좁다. 이런 상황은 아시아 나라 상호간 쌍방향의 이해와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초․중등학교에서 ‘다문화이해교육’을 하다보면 이런 어려운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인종선호도 조사에서도 아시아계가 가장 낮다. 아시아 이주민을 만나면 두렵고, 겁나고, 심지어는 냄새가 날 것 같다고 말한다. 국기만으로는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위치해 있는지 모른다. 각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의상을 입고 음식체험을 하게 되면, 그 때서야 비로소 우리와는 다르지만 같은 사람이라는 이해에 도달한다. 한국사회에는 지금 아시아가 없다. 교과과정에서조차 아시아의 역사와 인권을 다루지 않는다.

현재 140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외국인은 주로 아시아계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여성이다. 이들은 대개 한국인이 회피하는 3D업종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저임금은 물론이고 온갖 폭언과 폭행에 노출돼 있다. 더불어 중도입국 청소년 문제도 심각하다. 13~21세 중도입국 청소년의 경우 공교육에 들어가지 못함으로써 미성년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나홀로족이 돼 생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야말로 이주민 인권이 사각지대에 내몰리거나 방치되고 있다. 차별의 토양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사회의 대응이다. 그토록 다인종 ․ 다문화사회 진입을 외치면서 과연 ‘다문화 정책이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체 인구의 2.5%를 넘어서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순혈주의와 결합된 단일민족의식은 한국인의 자랑처럼 여겨지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일방의 동화만 있고 쌍방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다문화 정책은 필연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주민의 다문화 이해교육만 있고 상대 나라에 대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다문화 정책은 일방통행일 뿐이다.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세계인종차별철폐조약과 관련해서 “한국은 단일민족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한다”고 경고한 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결혼 이주여성을 상담하다보면 다양한 인종차별과 만난다. “한국인의 시선에는 인종차별이 가득하다”는 하소연을 어렵지 않게 듣는다. 매년 반복되는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감금․학대․성폭행 등은 한국인의 인권의식 수준이 뒤쳐졌음을 말해준다. ‘모든 인간은 존엄과 권리를 지니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세계인권선언을 무색케 한다.

인종과 종교, 출신 국가 ․ 민족 ․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을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된 진정 건수는 지난 2005년 32건에서 2010년 64건으로 5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삶을 영위하기가 행복하지 않다는 지표다. 따라서 이주민 인권 향상을 위해서는 조속히 ‘외국인 이주민 인종차별 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대 한국의 다문화 정책에 왜 공생 ․ 공존의 철학이 필요한지 질문에 응답해야 할 때다.

             출처 : 한국방송대학보 2011-10-31 제16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