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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

빈껍데기뿐인 '다문화 대책'

[시론] 빈껍데기뿐인 ‘다문화 대책’

< 등록일: 2009-11-30 오전 10:04:21   제1564호(2009-11-30) >
오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모든 이주민이 인간으로서 누리는 모든 권리와 자유는 인종, 국적 등의 차별 없이 행사돼야 한다’ 등 이주민 인권보장에 대한 내용이 올해에도 이슈가 될 것이다.

법적 지위를 불문하고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많은 이주민은 각종 언론보도와 설문조사에서 보듯 자신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임을 고발하고 있다. 성차별은 물론이고 잦은 가정폭력, 이주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시민권적 권리들이 제한받거나 차별받고 있다고 국제엠네스티도 경고하고 있다.

이주민 100만명 시대를 넘어선 지금, 다문화사회에 대한 보도는 언론의 단골메뉴가 된지 오래다. 물론 그에 따른 지원과 대처방안도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의 범죄 증가율을 운운하면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을 잠재적 범죄군으로 취급한다. 외국인 이주민 폭동사례가 미래의 한국 사례일 수 있다며 이구동성으로 호들갑을 떤다. 이주민에게 이 정도 모욕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대책은 학습부진아와 정서장애불안 등 예비적 ‘문제아’로 규정한다. 이러한 상황에 지자체의 조례에 발맞춰 지원금을 따먹으려는 지원단체는 난립 지경에 이르고 있다. 가히 한국사회는 다문화 증후군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각 지자체와 구청에서 개최하고 있는 각종 다문화관련 포럼, 다문화 공연, 음식나누기 등 다문화 행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노상카페와 나라별 잔치마당 등 행사의 들러리로 동원된 이주민의 경우 문화를 가장한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쯤 되면 일회성으로 끝나는 행사에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라는 쓴 소리가 들릴 만하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이제 ‘다이내믹 문화’의 세례에 맞춰 빠르고 쿨한 것까지는 좋지만 천박함을 면치 못할 때 그것은 다문화가 아니라 전시성을 면치 못한다. 여기에 저 악명 높았던 독재시대의 동원과 전시를 통해 계몽하려했던 파시즘의 통제가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하지만 정작 결혼 이주민들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한국어 학습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직업교육조차 연계되고 있지 못하다.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결혼 이주여성의 경우 카드발급은 물론이고 휴대전화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개설할 수 없는 처지다.
 
개개인의 인권은 사라지고 남편에게 종속된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편하고 모욕을 주는 한국식 다문화가 이주민의 입장에서 추진되기 보다는 한국인의 혈통과 순혈을 위해 희생양으로 영혼 없는 이주민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닐까?
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태국의 암폰(27세) 씨는 “한 반에 30~40명씩 배우는 한국어로는 따라가기 어렵다”고 하소연 했다.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지원센터에 가지만 점심시간이면 밥 먹을 곳도 없어 로비에서 밥을 먹는 형편”이라며 열악한 시설을 꼬집는다.

임신을 해서 집에서 한국어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에서 온 라이(23세) 씨는 그런대로 자신은 방문을 받아 사정은 좋지만, 6개월 정도의 한국어 공부로는 겨우 의사소통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 한숨을 내쉰다.
다문화와 관련한 각종 지원책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일회성과 생색뿐인 지원책이 문제인 것이다. 한국은 지금 불통(不通)의 다문화가 추진되고 있다.


<이세기 시인 인권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