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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

부끄러운 '국제도시 인천'


[미추홀 칼럼]부끄러운 ‘국제도시 인천’
[경향신문] 2009년 11월 27일(금) 오전 05:00   가| 이메일| 프린트


12월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전세계적으로 이주민의 숫자는 1억9천만 명이 넘는다. 35명 중 1명꼴로 이주민이다. 한국도 650만 명의 해외 이주민이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등지의 나라에서 이주민으로 살고 있다. 비단 이주는 국경을 넘는 일만은 아니다. 경제적 이유와 행복을 찾아 이주를 한다.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사를 하는 것도 이주다. 인천 역시 미추홀 이래 경향각지에서 일을 찾아 온 이주민이 정착한 고도(古都)이기도 하다.

외국인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국으로 오는 많은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여성은 행복한 삶을 찾아 이주를 해온 이주민이다. 2009년 9월 말 현재 이주노동자는 70만 명을 헤아리고 있고, 총 결혼건수 중 국제결혼건수의 비율(2008년 기준)은 11.0%로 3만 6200건에 달해, 결혼하는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다.그에 따른 자녀수도 급속히 증가추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인권조례 없이 ‘빈수레’

국제앰네스티는 최근 한국정부에게 이주민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를 지적한 바 있다. 작업장에서의 폭행과 폭언, 사업장 이동금지, 불법 강제단속 등으로 인권보호가 개도국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우려를 표했다. G20에 가입한 국가로서는 수치스럽게도 국제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인권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 UN이 정한 ‘모든 이주노동자 및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준수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실정인데도 여전히 이명박 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다문화가정의 실태 역시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다반사로 이뤄지는 가정폭행, 경제적 사정으로 모국으로 돌려보내는 아이들과 이혼으로 한가족부모의 증가, 그리고 그 자녀가 방치되고 있다. 2008년에는 9.7%에 달해, 이혼하는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커플의 이혼이다. 특히 2005년 보건복지부의 결혼이민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결혼이민자 가구 중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가구가 52.9%인데도 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는 13.7%에 불과하다.

다문화가정이 가난의 악순환에 노출될 우려가 많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빈곤의 재생산이 이주민에게 더 한층 ‘가난의 덫’으로 내몰고 있다고 데이비드 K. 쉬플러는 <워킹 푸어>에서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최하층을 형성하는 이주민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멕시코, 흑인 등의 계층에서 발생되는 가난은 자발적인 가난과는 거리가 먼 구조화하고 세계화한 위계질서의 체계화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번영의 그늘에는 최하층으로 전락한 이주민의 값싼 노동력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받는 대가는 알콜 중독과 마약, 상습적인 폭력, 무주택 상태, 생활보호라는 생활의 덫과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절망이다.

다문화시대 ‘불통의 멍에’ 벗길

다른 방식의 이주문제지만 재개발 이주과정에서 죽음이라는 비극을 낳은 용산사태는 우연이 아니다. 궁지에 몰린 이주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국가가 파시즘적 발상으로 물리력을 동원해 폭압적으로 진압한 야만의 극치다. 반시민적인 권력만 난무하는 파시즘적 통치가 다문화사회의 대처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국제앰네스티의 지적처럼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불통’이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나라에서 우리는 수치스럽게 세금을 내고 산다.

세계 10대 도시를 추구하는 인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과연 인천의 다문화 대책은 이주민이 차별 없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국제수준의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방치한 채 생색뿐인 통계수치만 만지작거리는 행정주의 다문화인가? 국제도시를 향해 분투하고 있는 인천이 인권조례 하나 없는 도시라는 수치는 면하길 바란다. 물론 답은 간단하다. 모든 이주민이 인간으로서 누리는 모든 권리와 자유는 인종, 국적 등의 차별 없이 행사돼야 한다는 국제수준에 걸 맞는 ‘외국인 인권조례’의 채택이다.

<이세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