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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꿈을 만나다

자스민의 인생유전

싱글 맘, 자스민의 결혼이주


마닐라에서 태어난 자스민(41세)는 스무살 때 싱글 맘(single mom)이 되었다. 미혼모로 1남 1녀를 낳았다. 남자는 그녀를 떠나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제시카는 유치원교사로 일을 했다. 그러나 삶은 빈곤해져만 갔다. 아이들은 점점 성장하여 입성이 좋아졌고, 취학연령이 되자 제시카의 삶은 오로지 아이들의 부양을 위해 사는 삶이었다. 그녀에게 운명은 거대한 쇠사슬처럼 옥죄여 왔고, 달리 탈출구가 없었다. 그녀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는 늘 ‘새로운 길’을 꿈꿨다.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면 이보다 못한 삶을 살지 않으리라 되새김질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직장 동료에게서 국제결혼 제안이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더 나아지지 않는 삶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은 그 길뿐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한국에서 온 남자와 한번 만난 뒤 바로 서류상으로 결혼을 하고 초청을 받아 한국으로 왔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녀는 사랑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뒷받침만 되면 행복은 얻어지리라 믿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1남 1녀를 둔 그녀에게 결혼은 쉽지 않은 일이고, 더욱이 문화와 정서가 다른 나라로 결혼이주를 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결혼은 대물림되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었고, 그리고 행복을 찾는 일이었다.  

그녀는 어렵사리 결정을 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면 가시밭길도 걸을 작정이었다. 새로운 삶은 언제나 설레는 기대와 흥분임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딸과 아들을 남겨두고 필리핀 마닐라를 떠나 한국의 홍천으로 결혼이주를 했다.

하지만 한국의 홍천은 도시에서 자란 그녀의 상상과 다른 곳이었다. 고추와 옥수수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산골에다가, 남편에게는 전처 사이에서 난 딸과 시부모가 있었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제시카에게 산골 아낙네의 삶은 좀처럼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묵묵부답의 무뚝뚝한 남편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남편은 자신을 아내로 생각하기보다는 식모로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갔다.

게다가 시부모를 모시는 일이 제시카에게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였다. 남편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생활에 시부모까지 모시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짐이었다. 재처로 들어온 제시카에게 온갖 잔소리는 마치 자신이 노예처럼 일을 부려먹어도 좋은 사람으로 대접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시부모의 살가운 관심조차 그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간섭처럼 여겨졌다. 남편과 잘 지내면 되겠지라는 애초의 생각은 시부모를 모시면서 연기처럼 증발했다.

도시에서만 생활을 해온 제시카에게 시골은 단순히 정서적으로 포근하고, 인정이 넘치는 사회가 아니었다. 열 두 가구가 전부이고, 그나마 젊은 사람은 제시카 뿐이었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과 빈집만이 덩그마니 있는 시골은 그녀에게는 단순히 낯설고 불편한 문화일 뿐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꿈꿔 온 행복이 이런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남편과 만들어가는 사랑 역시 좀처럼 뜨거워지질 않았다. 애정 없이 부부로 산다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결국 7년을 갈등 속에서 살아온 제시카는 남편과 별거를 선언하고, 7살 난 아들과 필리핀에서 데리고 온 딸을 데리고 홍천을 떠나 무작정 일을 찾아 도시로 왔다.



떠밀려온 삶, 찾아가는 삶



자스민은 핸드폰 조립공장에서 일을 한다. 한 달에 90만 원 정도를 벌고, 저녁 8시에 퇴근하여, 아들과 딸을 위해 밥을 짓고, 함께 저녁밥을 먹는다. 마닐라에 두고 온 아들과 한국으로 데리고 온 딸, 그리고 이곳에서 난 아들을 위해 한국의 여느 아줌마처럼 억척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새내기 엄마가 된 제시카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들이 학교에서 적어온 알림장은 알 수 없는 암호문을 해독하는 것처럼 어렵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때는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밤늦은 시간에 알림장을 갖고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 당최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마다 그녀는 전쟁을 치른다. 준비물을 챙겨야하고, 알림장을 그때그때 체크해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제시카에게는 이중삼중의 고통으로 다가 온다. 잔업까지 하고 들어온 날은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 알림장을 챙기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가끔씩 신나 냄새 때문에 현기증이 일 때도 있다. 하지만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말수가 유난히 적은 아이가 또래의 친구들과 사귀면서 밝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아이가 혹시 발달장애라도 겪는 것이 아닌지, 뒤처진 언어로 인해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가 혹여 또래 아이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적이 걱정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가 학교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자스민이 일을 끝내고 퇴근하는 길은 종종걸음이다. 집에서 기다릴 아들과 딸이 눈에 밟힌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녀는 시장 좌판에 깔려있는 봄나물에 몇 번이나 눈이 갔다. 한국에서 12년, 제시카에게도 한국의 봄나물쯤은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눈썰미가 생겼다. 알싸하게 아리는 두릅의 맛은 그녀에게도 잊지 못하는 봄의 미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처음 한국으로 시집 온 곳은 강원도 홍천이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가끔씩 홍천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지금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행복하다. 새록새록 모아지는 돈도 돈이거니와, 도시의 활기찬 움직임이 그녀에게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공기가 그녀에게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홍천에 있는 남편에게 도시에 와서 살자고 몇 번 말을 했지만,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다. 하긴 남편이 평생 일을 해온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을 터이다. 하지만 제시카는 그런 남편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아니 어쩌면 제시카는 집으로 가는 먼 길을 위해 되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자스민에게 가족의 의미를 물었다. 그녀는 ‘끈’이라고 했다. 서구식 가족관계에 익숙한 그녀에게 뜻밖의 대답이다. 마닐라에서 싱글 맘으로 살아오면서 겪었을 삶의 무게로 인해 짐을 내려놓을 만도 한 가족이 그녀에게는 희망이다. 끈으로 이어진 삶만큼 끈끈한 가족애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그녀는 필리핀에 두고 온 아들과 이곳의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저녁밥을 함께 먹는 꿈을 꾼다. 그래서 더욱 억척스럽다.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왜 사랑 없이 한국 사람과 결혼을 꿈꿨는가. 행복 하고 싶어서 결혼을 택했다는 그녀의 대답이 담담했다. 가난이 지긋지긋했고, 또 다른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길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마디 덧붙였다. 결혼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진실한 사랑을 키우면서 유쾌하고 행복한 삶을 꿈꿨다고 했다. 새로운 기회를 가지기 위해, 새로운 삶의 방식과 환경을 만들기 위해 결혼했다고 했다. 그녀는 또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돈을 벌어 가족을 돌보고, 자신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많은 결혼이주가 그러하듯이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서로에 대한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이 불화와 오해를 낳는다고 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을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 채 틈을 안고 시작한 결혼이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녀도 최근 결혼이주의 문제점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다. 자신의 주변에도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이주한 많은 아시아의 이주여성이 있다고 했다. 고용허가제로 올 경우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결혼이주는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결혼이라는 경로를 통해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이주를 감행한다고 했다.

제시카는 결혼이주민에게 배려와 동정의 시선이 아니라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혼이주민들이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돈을 보고 한국으로 팔려 온 외국인으로 자신을 보기보다는,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사람으로 대해줄길 바랐다.

나는 묻는다. 현재보다 좀 더 나은 삶은 있는가? 현재와 같은 삶의 방식을 바꿀 수는 없는가? 누구나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꿈꾼다. 동상이몽일지라도 누구나 행복의 길을 찾는다. 행복한 길을 찾아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주의 삶을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세계화라는 거대한 괴물과 싸워야 한다. 주변부로 떠밀려오는 삶에 대한 자각이 없이는 어쩌면 이주란 한낮 장밋빛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의 과정은 목숨을 건 용기 있는 행동이다. 더욱이 결혼이주는 단순히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꿈을 위한 탈출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는 것이 개별적인 이유이겠지만, 근본적으로 세계화의 진행과정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값싼 노동력의 이동이 결혼이주가 아닐까. 주변부화 되는 세계질서체제 속에서 불안한 삶의 자구책이 이주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오늘날 국경을 넘어 또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고 있는 결혼이주란 세계화의 그늘이 점점 심화 확장되는 시발이 아닌가.



글쓴이 이세기는 시인이며, 인권운동가로서 현재 아시아이주문화공간 <오늘>에서 일하고 있다.
* 이 글은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인 창>과 동시에 연재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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