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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꿈을 만나다

파트타임 인생

파트타임 인생


이세기



최저임금? 이곳에는 없어요
봄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골목길에 들어서면서 몇 번 하늘을 쳐다보았다. 황사가 드리워진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꽃은 언제 기별이 오려나? 아마도 꽃이 피면 웅크린 마음이 조금은 환해질 것이다.

돈(37세) 씨의 집은 다가구주택이 닥지닥지 붙은 골목에 있다. 골목 입구 담벼락에 이파리가 떨어진 앙상한 개오동나무가 삐죽하게 서 있다. 초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나무는 시원한 이파리를 보일 것이다. 2층으로 향하는 다가구주택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문을 열자 손바닥만 한 부엌이 나온다. 그리고 겨울을 함께 난 장미 화분 하나가 놓여 있다. 때마침 부인 린(39세) 씨가 음식을 준비하는 중이다. “마부하이.” 내가 타갈로그어로 인사를 하자 그는 곧바로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방 안에 들어서자 장난감이 가득하다. 소꿉놀이를 한 듯 장난감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세 평쯤 되는 방 안에 침대와 간이 옷장, 그리고 모니터가 켜진 컴퓨터가 보인다. 살림이 단출하다. 올해 네 살이 된 딸 돈나린이 갑작스러운 방문객에 검은 눈망울을 씀벅이며 엄마를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색연필과 종이를 건네주자 다시 생긋한다. 겨우 네 명 정도가 앉을 만한 방 안이 더욱 비좁아졌다. 돈나린의 하루를 물었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놀아요. 밤이면 가끔 산책을 나가요.”

돈 씨 부부는 한국 생활 9년째를 맞고 있다. 부인인 린 씨가 산업연수생으로 먼저 한국에 왔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남편이 고용허가제로 들어왔다. 그 사이 한국에서 둘째 돈나린을 낳았다. 돈나린은 국적이 없다. 태어나자마자 무국적자가 되었다. 반면에 필리핀 친정에서 자라는 첫째는 열 살이 되었다. 낳은 지 1년도 안 된 젖먹이를 떼어놓고 린 씨는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다. 그리고는 여태껏 헤어져 살고 있다. 때마침 딸과 인터넷으로 메신저를 하고 있다. “딸 보고 싶지 않아요?” 묻는 말에 그녀의 눈에 잠시 눈물이 그렁 맺혔다. 그녀는 메신저를 통해 필리핀에 있는 큰딸을 보는 것이 하루 일과라고 한다. 한 달에 얼마씩 생활비를 보내느냐고 물으니, 가계부를 내놓는다.

월세 20만 원, 가스비 13만 원, 수도세 3만 원, 전기료 3만 원, 음식비 30만 원, 돈나린에게 5만 원, 남편의 차비 등으로 하루 1만 원, 한 달 30만 원 정도 들어가는 돈 이외에 필리핀에 있는 딸과 어머니를 위해 월 18만 원, 3개월에 한 번은 40만 원 정도를 송금한다. 그야말로 빠듯하다. 그래도 한국이 좋다. 이유가 궁색하지 않다.

“일이 있잖아요.”

린 씨는 차린 음식이 없다며 필리핀 우동인 팬싯(Pansit)과 말린 생선을 내놓는다. 생선이 마치 우리네 새끼 전어를 말린 것 같다. 짭조름하다. 필리핀 사람들은 유독 물고기 말린 것을 좋아한다. 마치 우리네 젓갈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입맛이 없을 때 별미가 따로 없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말린 물고기 하나면 밥상이 풍성한 느낌이다.
돈 씨는 최근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 가구 배달 일을 하다가 공장에 취직을 한 것이다. 월급제는 아니고 파트타임이지만 월 120만 원은 번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을 해서 저녁 9시까지 꼬박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온다. 그래도 힘들지 않다. 자신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라고, 인근 공장에서 핸드폰 조립 일을 하는 필리핀 이주여성들의 경우 “보통 60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이라고 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최저임금, 이곳에는 없어요.”

물량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시간제 파트타임이 대세고, 경우에 따라서 1개월에서 심지어 3개월 정도 월급을 깔아놓는 경우도 많다. 주로 하청을 받아 일을 하는 형편이다 보니 월급이 밀리기 일쑤다. 월급이 밀려도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유는 미등록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직률도 높고 이 공장 저 공장으로 떠도는 경우가 많다. 적게는 4∼5명에서 많게는 10명 내외 규모의 공장에서 주로 핸드폰 조립을 하고 있다. 고정급이 아니다 보니 생활이 항상 불안정하다. 일감이 많아도 파트타임으로만 사람을 구한다. “이유야 월급을 적게 주자는 심보가 아니겠느냐. 그래도 그나마 파트타임이라도 일감이 있어서 괜찮다. 한 푼 두 푼 모아 힘겨운 이주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꿈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가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부인 린 씨를 포함해서 함께 공장을 다니는 이주여성노동자끼리 계(契)를 들었다. 한 달에 10만 원씩 내는 계였는데, 계주가 다름 아닌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계주가 사라졌다. 찾아보니 남편이 곗돈을 가지고 외국으로 도망갔고, 계주를 찾기는 했지만 그녀도 도망간 남편을 찾을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계는 깨지고 목돈을 모아 귀환하리라는 꿈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사기로 돈도 떼이고 월급도 묶이다 보니 귀환할 수 없는 매인 몸이 되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뭐.”

때마침 온 조던(46세) 씨 부부가 옆에서 거들었다. “살기 위해 일만 한다”는 그의 말에서 짐승처럼 산다는 말이 스쳤다. 7년째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조던 씨 부부는 필리핀 루손에 있는 아이들이 현재 대학생이라서 학비를 벌기 위해서라도 2년은 더 일을 해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가족과 헤어져 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던 씨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여기는 일이 있잖아요.”

보증금 15일치 깔린 돈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인근 주변 공장도 마찬가지다. 때마침 전선 릴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레오(43세) 씨를 만났다.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그는 같은 필리핀 이주노동자인 치토(48세) 씨와 함께 일한다. 치토 씨는 필리핀에서 은행원이었다. “왜 한국으로 왔어요?”라고 묻는 말에 대답이 짧다.

“먹고살기 위해서죠.”

레오 씨는 이 일대에서 대부로 통한다. 근 13년이 넘는 구력에다 이 바닥에서는 제법 잔뼈가 굵은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사장도 열쇠를 맡기고 가끔씩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주러 올 뿐이다. 생산량만 맞추면 아무런 불만이 없다. 그러니까 레오는 공장장이자, 현장 노동자인 셈이다.

“내가 손을 놓으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해요.”

그의 아내는 필리핀에 있다. 아들과 딸도 있다. 그는 월급 130만 원 중 80만 원을 필리핀 가족에게 보낸다. 나머지로 이곳에서 방세와 각종 식자재를 구입하고 나면 담배 살 돈도 빠듯하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는 파트타임으로 인근 공장에서 일한다. 그래서 손에 쥐는 돈이 30만 원 정도다.
가족이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곳이 고향이에요.”

그는 일이 없는 주말에는 성당에도 가고 필리핀 동료들과 농구도 한다. 지역 공동체별로 농구 리그도 갖는다.

인근에서 만난 이주여성 죠슈아(32세) 씨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원래 가수였다. 라이브카페 등에서 노래를 부르다 한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2004년 5월 예술흥행비자(E6)를 받아 한국 땅을 밟았다. 처음 한두 달은 그런대로 벌이도 괜찮았고 지낼 만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에이전시의 요구가 애초의 계약과 달랐다. 노래뿐만 아니라 밤무대에서 춤까지 추게 했다. 급여 인상이나 보너스도 없이 밤낮으로 일을 했다. 에이전시에 매인 몸이나 다름없었다. 참다못해 결국 동료들과 함께 뿔뿔이 헤어졌고 미등록자가 되었다.

그녀는 최근 다니던 공장을 퇴사하면서 보증금으로 15일치 깔린 돈과 15일치 일당을 받지 못했다. 벌써 3개월째 사장과 입씨름을 하면서 돈을 받기 위해 공장을 찾아갔지만, 사장은 번번이 하청 탓으로 돌렸다.

“사장님은 만날 다음에 와, 다음에 와, 라고만 해요.”

다음에 가면, 그때뿐이다. 그녀는 이 바닥에서는 사장이 돈이 있으면 주고, 없으면 다음에 받는다고 한다. 즉, 사장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에는 기약이 없다. 보증금 조로 깔린 15일치의 돈은 아예 받을 수 없는 돈이다. 그 돈을 받기 위해서는 임금이 계속 체불된 상태로 가야 한다. 차라리 떼이고 마는 것이 상책이다. 이 바닥의 법칙이다. 그렇다고 노동부에 진정을 하여 받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나마 파트타임 자리도 보장받을 수 없어 이래저래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연유는 일자리를 찾는 이주여성들이 많은 데 비해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파트타임 일감만 있다 보니 한 군데서 오랫동안 일할 형편이 못 된다. 영세한 하청 사장들도 그게 편하다. 핸드폰 조립이라는 것이 물량이 많으면 밤낮이 없지만, 일감이 없으면 1주일이고 2주일이고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1년 동안 일해도 퇴직금은 꿈도 못 꾼다. 대신 야근이 많은 달에는 가끔 10만 원 정도 얹어주는 경우가 전부다. 일하는 사람도 사장을 포함해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6∼7명이다. 출근 시간만 있지 퇴근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일이 있으면 야근이고 없으면 잔업으로 마친다. 말이 파트타임이지 실제로는 고정직이다.

실제로 임금이 체불된 영세 사업장을 방문하게 되면 대부분 사장이 없다. 일할 시간에 영업을 나갔는지 자리를 비우고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약속을 하고 가도 역시 사장을 만나기 어렵다. 손전화는 꺼졌거나 받지 않는다. ‘꼭 주겠다’는 말은 ‘못 주겠다’는 말과 같다. 흔한 말로 ‘경기 탓’으로 돌린다. 그러다 어쩌다 만나서 퇴직금을 달라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불법자들은 없어.”

사장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이 바닥의 법칙이다.

2년째 파트타임으로 죠슈아와 함께 일하고 있는 카리나(34세) 씨도 깔린 돈이 이곳저곳을 합치면 얼추 300만 원이 된다. 그녀는 5년 전에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얼마 못 갔다. 잦은 구타로 집을 나왔다. 결국에는 결혼 생활 3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혼 사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녀는 한국인의 성 문화를 꼬집었다. 남편은 아내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는 미등록자가 되었다. 물론 쫓겨나듯 집을 나온 여느 이주여성들처럼 여권이 없다. 자신의 신분을 확인할 그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제 단속에 걸려 추방당할지 모른다.

세상은 상처받은 사람끼리 모여 산다. 제각각 상처가 있지만 드러내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꿈과 행복을 찾아왔지만, 불행이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 지금 이곳이 아닐까.
카리나 씨가 차를 뽑아왔다. 따뜻하다. 움츠렸던 몸에 온기가 돈다. 그리고는 이내 물량을 채우기 위해 자리를 떴다. 파란곡절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잠시 생각이 스쳤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고, 오늘은 또 내일과 다른 나를 만날 것이다. 서로 다른 내가 이어져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닐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한 말이 자꾸 맴돌았다.

“죽지 못해 산다고 하잖아요. 그래도 지금 행복해요.”

‘죽지 못해 산다’, 어디에서 많이 듣던 말이다. 벼랑으로 몰리다 보면 말도 닮는가 보다. 그런데 그래도 행복하다는 낙천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비애일 것이다. 낙천과 비애는 한 몸일 테니. 한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슬퍼도 슬퍼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아닌가.

그리고 변한 것은 없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변한 것은 그저 아이가 태어나고, 동료가 단속에 추방당하고, 임금을 떼이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미등록자는 여전히 ‘불법자들’이라는 것이다. 치욕을 견디면서 같은 하늘 아래에서 발버둥 치며 오늘을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작은 난쟁이들이 있을 뿐이다.

점심을 먹고 공장으로 가는 길인지 이주노동자 두 명이 자라목을 한 채 골목길로 사라진다. 담장으로 막 목련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날씨 탓인지 내 몸도 움츠려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올봄은 유난히 추워, 봄도 더디게 오고. 그래서 없는 사람들에게는 여름이 좋다잖아”,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했다.



글쓴이 시인이며 인권운동가로서 현재 아시아이주문화공간 ‘오늘’에서 일하고 있다.
* 이 글은 <삶이 보이는 창> 74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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