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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꿈을 만나다

목소리 없는 목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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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



짜오위의 하루
짜오위(21세)의 하루는 정오가 지나서 시작된다. 공장에 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부모와 다르다. 식구가 함께 아침밥을 먹은 지도 오래되었다. 밤새 인터넷을 하다 새벽 5시쯤에 잠이 든 그는 2시쯤 느지막하게 일어나 다시 인터넷에 접속한다. 그리고는 게임과 메신저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4년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짜오위는 변한 것이 없다. 하루 일과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 사이 한국어를 배운 것도 아니고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다. 대만식 교육을 하는 화교 학교에 입학했지만 세 달 만에 학업을 포기했다. 이유는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거의 매일 싸웠어요. 놀림을 받는 것도 싫었고,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못했어요. 왕따였어요.”

결국 그는 중도에 학교를 그만뒀다. 그리고는 ‘방콕족’이 되었다. 생활은 불규칙하고 인터넷 중독자가 되다시피 했다. 오로지 게임만이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부모의 권유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어 반에 들어갔지만 얼마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함께 공부할 또래가 없다 보니 의욕도 생기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다. 동네 인근의 공장에 다니기도 했지만, 단속 등으로 여의치 않았다. 결국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되풀이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할 일 없이 보내고 한국 생활에 싫증이 날 즈음에 부모의 성화에 중국 다롄(大連)을 오가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교라도 졸업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부모의 요구가 컸다.

그는 최근 같은 처지의 몇몇 한족 친구들과 어울리며 생활하고 있다. 갈 곳이 없는 1~3년차 한족 친구들과 연락이 돼 서로 어울린다. 그에게 요즘 생활을 물었다.
“낮에 만나 인터넷도 하고 대림동에 가서 밥도 사 먹고, 동네 운동장에서 농구도 하며 보내요.”
“친구들이 많으냐?”고 물었다.
“메신저를 통해 만나는 한족 친구들이 스무 명쯤 되는데, 그마저 거리가 멀어서 서로 못 보고 두세 명 정도 자주 만나요.”

웃는 그의 얼굴에 나이 또래와 다르게 그늘이 스친다. 그늘은 숨길 수 없다. 나이 또래에 비해 웃음기가 많지 않다. 아마도 웃을 날이 많지 않았다는 듯이 얼굴에 표가 난다. 그는 친구 얘기가 나오자 한마디 더 했다.
“대련에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 좋아요.”
“한국 친구는 없느냐?”고 물었다.
“사귈 기회가 없어요. 만날 수가 없어요.”

1년에 한두 번 배를 타고 다롄에 간다는 그는 그곳에서 비로소 자유를 느낀다는 말투다. 거기에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재미가 없다는 역설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인지 다롄 얘기만 나오면 절로 흥이 나는 것 같았다. 한국에 온 지 4년이 지났지만, 그에게 한국은 여전히 불편한 동거일 뿐이다. 친구도 없고,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자신을 쳐다보는 뭇시선도 마뜩잖다.
“주변 사람들이 마치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이 싫어요”라고 말하면서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불편하다고 했다.
친구들의 근황을 묻자 중도에 입국하여 대개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화교 학교에 입학하거나 아니면 아예 학교 진학을 포기한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메신저를 통해 만나는 친구들의 경우 대부분 학교에 다니지 않아요.”

한국 생활이 3년째인 그의 한족 친구인 왕보량(18세)도 마찬가지다. 그는 부모들이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어, 혼자서 자취 생활을 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친구인 짜오위 집에 오는 것이 그의 유일한 외출이자, 낙이다. 그는 얼마 전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 역시 하루 종일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실제로 인터넷밖에는 할 일이 없어요. 나쁘게만 보지 말아요.”

짜오위는 인터넷과 메신저가 그저 시간을 빼앗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하고 가끔씩은 쓸 만한 정보도 교환한다고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도 생각이 있어요. 친구들을 만나면 어떻게 한국 생활을 할 것인지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해요. 문제는 갈 곳이 없어요. 함께 모여서 이런 저런 고민을 터놓고 얘기할 장소도 친구도 많지 않아요”
얘기를 듣다 보니 정작 갈 곳이 없다는 말이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

짜오위는 최근 대학 입학을 준비 중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에 외국인특례입학으로 대학을 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대학에서 한국어 3급 과정을 듣고 있다. 1년 정도 한국어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고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해서다. 물론 이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 4년이라는 공백기가 그에게 얼마나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그도 가봐야겠다고 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장래를 낙관했다.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해서 무역 일을 하고 싶어요.”

조국? 국가? 장래?
물론 대다수 중도 입국 청소년의 경우 짜오위나 왕보량 같지는 않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서 중도 입국한 경우 나름대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양양(21세)은 한국에 온 지 3개월째를 맞고 있다. 그는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중고 자전거를 구했다.
“자전거로 공장도 다니고, 마트도 가고, 한국어 공부를 하러갈 때 이용해요”
남들처럼 근사한 레저용 자전거가 아니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한족 출신이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용접공으로 잠시 일을 했다. 그러다 10년 전에 먼저 한국으로 와서 정착한 어머니를 따라왔다. 어머니는 조선족이지만 아버지가 한족이라서 그는 성장하면서 줄곧 중국어를 썼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한국어를 쓰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한국어를 말하고 읽고 쓰지 못했다.
요즘 그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다니는 공장 사장에게 부탁을 해서 일주일에 세 번은 한국어를 배운다. 그리고는 하루에 열한 시간 이상을 공장에서 보낸다.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그는 공장에서 지시하는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사장으로부터 핀잔을 받는다고 했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할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불편이 따랐다.

그는 머지않아 한국 국적을 취득할 예정이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우선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처음에 사장은 일손이 부족해 선뜻 답하지 않았지만 야간작업까지 할 수 있다는 말에 어렵사리 승낙했다.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친구도 많은데 굳이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에 왔느냐고 물었지만, 그의 대답이 의외로 서슴없다.
“돈을 벌어서 중국에 있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와서 결혼하고 싶어요.”
당장은 의사소통이 안 되어 불편하고, 한국에 아는 친구 하나 없지만 그런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젊고 꿈이 있기 때문이란다.
“주목을 받는 것이 싫어요. 그렇다고 우리들의 장래가 어둡다고 하는 것도 싫어요. 오히려 구속 없이 살 수 있어서 더 좋을지 모르겠어요. 바람이 있다면 더 많은 친구들과 사귀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정보들이 제공되는 것도 좋고 함께 만나고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면서 웃었다. 생각이 야무졌다.

중학교 2학년 때 톈진(天津)에서 한국에 왔다는 재중동포 4세인 조양(21세)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의 화교 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그런데 문제는 학력 인정이 되지 않아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인증을 받은 후 대학에 들어갔다.
“처음에 상처도 많았어요. 한국어도 모르고, 주변에 친구도 없다 보니, 혼자서 놀고 게임에 중독되어 생활했어요. 하루 일곱 시간은 기본으로 했어요. 처음 1년을 그렇게 보내다 화교 학교에 들어갔지만 거기에서도 어울리기가 어려웠어요. 화교 학교에 들어가 보니 오히려 화교 학생들이 한국어로 끼리끼리 어울려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1990년에 출생한 그는 자신이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정체성의 혼란이 있을 때도 있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 자신이 속한 나라나 국적이 어디인지에 대해서 물었다.
“국적은 별로 문제가 안 돼요. 중국에서 조선족이라고 상처받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태어나 성장한 중국이 싫지 않아요. 그렇다고 한국이 나의 조국이라는 생각을 딱히 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 자신의 처지를 “애매함”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도 좋고 중국도 좋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청소년기에 정말 상처 많이 받아요. 하지만 자기 노력도 중요한 것 같아요. 학교 교과 과정도 다르고 한국어도 모르다 보니 정규 학교에는 진학이 어려워요. 각자가 알아서 혼자 발명한 한국어를 하거나 생활을 하는 방법밖에는 따로 없어요. 그나마 대학을 진학한 저 같은 경우는 어쩌면 행운이라고 해야겠죠.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지켜보는 것도 괜찮다고 봐요.”

그에게 “혼자 발명한 한국어”가 뭐냐고 물었다.
“‘알겠습니다’를 ‘앙아’ 하곤 했어요. 혼자 생활하다 보니 한국어를 습득하기가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혼자 발명한 한국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가 발명했다는 ‘앙아’라는 말에서 왠지 쓸쓸함이 묻어 나왔다. 국적도 민족도 나라도 조국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 속에 오히려 좁은 세계가 아니라 큰 세계가 불현듯 자라는 것은 웬일일까.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소속이오? 경계인?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인이라고 해야 될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저희 세대는 얽매이고 소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한국도 중국도 다 좋아요. 딱히 거부감이 없어요. 그렇다고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조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닭을 튀기는 어머니의 일을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저녁 8시, 사람들이 뿔뿔이 제 갈 길을 간다. 짜오위나 왕보량이 떠오른다. 21세기 도시형 로빈슨 크루소가 바로 이들이 아닐까? 아니, 우리 모두가 아닐까? 섬처럼 산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사람은 결여된 존재, 결핍된 존재이자 이 세상에 버려진 존재가 아닐까?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놀고, 혼자서 집에 있다. 풍요 속에 그늘이 만만치 않다.
아니, 그것은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나는 중도 입국한 청소년이나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라는 추측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람은 제각각 갈 길이 있고, 또 더불어 산다. 내가 부족하면 내 곁에 누군가가 채울 수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까.

한낮에 뜨거운 태양이 사라진 자리에 넝쿨장미가 마냥 뜨겁게 타들어가고 있다. 땅거미가 내려온다. 짜오위나 왕보량, 그리고 조양에게 또다시 혼자 있는 밤이 찾아올 것이다.  

* 국제결혼, 재혼가정, 결혼이민자의 국적 취득 후 현지 자녀의 초청 입국, 재중동포들의 국적 회복 및 취득 증가로 연간 2000여 명의 중도 입국 청소년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중도 입국 청소년의 경우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이나 ‘다문화가족지원법’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초등학교 연령의 경우 재학률이 비교적 높은 반면 13세 이상의 중도 입국 청소년의 경우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미성년 노동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관련 법규의 재정과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글쓴이 시인이며 인권운동가로서 현재 아시아이주문화공간 ‘오늘’에서 일하고 있다.
* 이 글은 <삶이 보이는 창> 75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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