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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꿈을 만나다

결혼이주문화와 인천의 변화 그리고 한국사회


국경 없는 결혼이주
몇 년 전 방문한 방콕(Bangkok)에서 느낀 첫인상은 부러움이었다. 도시의 활력에 새삼 놀랐기 때문이다. 세계 각처에서 몰려드는 배낭족의 천국이라는 방콕의 방람프(Banglamphu) 거리의 인파는 그야말로 젊은 에너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도시가 다이내믹한 데는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의 혼재도 한몫한다는 것을 깜냥으로 느꼈던 것이다.
최근 두 번째로 방콕을 방문하면서 새삼 느낀 것은 실제로 ‘미소의 나라’라고 불리는 태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실 인도차이나반도의 오랜 전통은 웅숭깊다. 모든 강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메콩강(Mekong River)을 주강으로 한 버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은 일찍이 생명의 젖줄로 발원하여 오랜 불교문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무에타이(Muay Thai)에 열광하고 트렌스젠더(transgender)의 천국이자,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를 믿는 나라. 입헌군주국으로 ‘절대적’이라는 수식이 붙을 정도로 살아있는 왕이자 생불(生佛)로 추앙받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국왕의 실존은 이상하리만큼 복고적인 인상을 주었다. 거기에 1932년 이래 열아홉 차례의 쿠데타와 쿠데타 기도가 발생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는 더욱 복잡한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데 이번 방문을 통해 인상적이었던 것은 방콕의 거리마다 수놓인 레드셔츠(Red Shirts)의 물결이었다. 태국 민주화의 상징이 되고 있는 레드셔츠가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태국으로 이주해 태국왕권에 적극 협력하면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화교(華僑)세력이 있다. 이들은 태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서 태국사회의 변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태국의 개혁과 변화를 모색하는 화교 내 일부 신흥세력으로 불리는 레드셔츠는 경제적 배경을 기반으로 노쇠해져 가는 태국의 입헌군주제에 균열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신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레드셔츠의 등장으로 태국화교들의 정치적 요구가 더욱 거셀 전망이어서 도시의 활력은 더욱 젊고 패기에 차오를 것이 분명하다.


태국에 대한 소회를 이처럼 덧붙인 이유는 바로 최근 양국 사이에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교류 때문이다. 한국과 태국, 두 나라가 불교라는 역사적 공유와는 다른 차원인 현실적인 가교가 뜻밖에도 결혼이주와 이주노동자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연대와 교류의 감정이 이는 것은 비단 아시아권역이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이러한 감정의 배면에는 불교를 한통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도 있지만 한류(韓流)도 한몫하고 있다. 태국에서 온 ‘2PM’의 가수 닉쿤(Nichkhun)은 태국과 한국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이른바 한류바람의 진원지 역할을 독특히 하고 있다. 태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드라마를 보고 한국노래가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시내 쇼핑몰의 곳곳에서 들려오는 것은 이제 별스런 일이 아니다.
태국 동북부지방인 롱카이(Nong Khai)에서 결혼이주를 온 티마폰 씨(27세)도 한국에 대한 인상이 한류에 있다고 했다. 한국의 드라마나 한국으로 결혼이주를 한 사람들에게서 한국을 접했다며, 인정이 많고 잘살고 깨끗한 이미지가 결혼을 통한 월경을 꿈꾸는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결혼이주의 결심은 노동이주라고 했다. 미국과 호주 등 전통적인 이민국가에 비해 공식적인 이민의 통로가 거의 없는 아시아에서 결혼이주는 유일한 이주통로이기 때문이다. 국적을 포기하고 국경을 넘는 이유다. 그런데 문득 드는 의문이 하나있다. 한류의 열풍에 맞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결혼이주는 한국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

넘치는 다문화바람
2011년 현재 국내체류 외국인 수는 126만 명에 이른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 40명 중에 한 명은 외국인인 셈이다. 그 중 결혼이주자의 경우가 141,654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결혼이주는 한국의 문화 풍속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간 13%를 육박하는 국제결혼이주의 추세가 유교와 불교를 연하고 있는 중국·베트남·일본 등 동아시아를 접점으로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결혼이주에 따른 문화·복지적 수효뿐만 아니라 제도와 정책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요구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표>에서 볼 수 있듯 전체 결혼이주자의 남녀 성비율에서 이주의 여성화가 뚜렷하지만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88% 이상이 향후 취업활동을 하고 싶다는 설문응답을 보면, 이주의 여성화는 결혼이주와 노동이주가 결합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결혼이주여성의 80%가 도시에 산다. 과거 결혼이주가 농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최근에는 도시를 정주공간으로 삼고 있다. 결혼이주의 배경이 단순히 가부장적 부계혈연을 잇는 혈통승계 중심이 아니라 노동이주로 급속하게 증가되고 있는 것이다.
인천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과거 이주의 도시답게 결혼이주 유입이 활발한 도시 중에 하나다. 현재 인천의 결혼이주자 수는 8,000명에 이르고 있다.2 인천의 인구가 270만 명이라고 했을 때 결혼이주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2.3%를 넘어서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고 한다면 인천의 인구비율 중 결혼이주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다. 이로 인하여 각 구별로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설립되었으며, 한국어강의, 중도입국 청소년반 운영, 사회통합이수제 등이 실시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할랄푸드(halal food)아시아계 마켓가 공단주변과 이주노동자 거주지 중심으로 들어서 있고 이슬람 예배당이 부평, 가좌동, 검단 등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또한 ‘아시아 이주민축제’, ‘인조이 아시아(In-Joy Asia) 이주민문화축제’ 등 대규모 축제성 연례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다문화포럼’, ‘다문화강좌’, ‘다문화정책’, ‘다문화교육’ 등 각종 다문화를 수식어로 한 행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각급 학교 단위에서도 ‘방과후 다문화반’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주민 부모와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교육을 비롯하여 전통문화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인천에도 유치원 다섯 곳을 비롯해 서른 곳의 초등학교와 네 곳의 중학교 등 총 서른아홉 곳의 다문화중심학교가 지정되어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정부의 지원 하에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지역의 대학에 다문화 석박사 과정이 개설되어 있으며, ‘다문화거리’를 조성하는 특색화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가히 한류에 맞서는 아시아류(asian wave)의 다문화바람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결혼이주는 단순히 사람만 오는 것이 아니다. 결혼이주여성 한 명이 한국으로 온다는 것은 100개의 언어와 문화가 동시에 들어오는 것이다.3 일례로 인천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는 ‘아시아 문학의 밤’은 아시아에서 온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 유학생 등이 자국의 문학을 소개하고 낭독하는 자리로 매김 되고 있다. 행사 중에는 자국문학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결혼생활에서 느낀 진솔한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결혼이주여성들의 다양한 활동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천 가좌동에 살면서 다문화강사로 초등학교에서 다문화사회 이해와 인권교육을 했던 태국에서 온 펀핏 씨(36세)는 기회가 닫으면 태국의 문화와 전통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회가 많지 않다. 공장 일밖에 없다. 사회적 일자리나 직업훈련을 통해서 일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며 실제 이주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한다. 이는 비단 펀핏 씨만의 요구가 아니다. 대다수의 결혼이주여성은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참여를 무엇보다 최우선가치로 여기고 있다.
UN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50년까지 이민자 1,159만 명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때가 되면 이민자와 그 자녀의 숫자가 전체인구 가운데 21.3%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머지않아 외국태생 인구비율이 국민의 5%에 이르는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을 예고하고 있어 이들 이주민에 대한 국가적 대응전략이 현안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국가성장의 모델로 적어도 이주민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변화의 지점에 이주민이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동화 다문화주의를 넘어
이주는 각 나라의 문화와 언어가 들어온다는 면에서 일국성을 넘어 다국성을 띈다. 이주민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할 때 미치는 문화적 파급효과와 영향력은 지대하다. 한 사회의 근본적인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다문화사회에 대한 열풍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사회를 위한 추진에 행사위주의 사업만 난무하고 정작 당사자인 이주민이 처한 상황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는 또 하나의 ‘분리’를 통한 구별짓기라는 지적을 면치 못할 것이다. 더욱이 일국으로의 동화(同化)만 있고 다국성에 대한 상호침투가 되지 않는다면 한국식 다문화정책은 표류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주를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아시아발(發) 문화융합이 일회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쌍방향 연대의 필요가 긴요하게 제기된다. 굳이 문화상대주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문화의 융합은 일국성을 뛰어넘어 아시아 전역의 지역성을 매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유행하는 다문화담론의 근저에는 동화주의에 가까운 지원책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복 입히기, 김치 담그기, 각종 한국식 예절의 강요는 체험을 넘어 국민통합전략의 일환으로 치러지는 또 다른 강요라는 점에서 인권침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거기에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로 따로 분리·구분하거나 ‘지원’이라는 명분을 통해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또 다른 차별을 낳을 소지를 안고 있다. 문제는 한국식 다문화전략이 지나칠 정도로 동화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것에 있다. 쌍방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문화일국주의가 얼마나 패쇄적이고 반문화적인지 역사적 실례를 적시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서 반다문화주의(anti-multiculturalism)의 형성은 이러한 곳에서 숙주처럼 자라난다. 최근 반다문화사회를 주창하는 목소리도 심심찮다. 여기에는 국제결혼이주로 인한 실패와 일자리 잠식, 외국인 범죄의 상승도 한몫하고 있다. 제노사이드(genocide)를 연상케 하는 일종의 인종학적인 혐오가 도사려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발간한 『결혼이주여성 인권백서』(2009)에 따르면 다문화부부의 갈등을 초래한 원인으로는 생활방식의 차이가 18.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성격 차이(17.2%), 시댁문제(8.9%), 경제문제(8.2%) 등의 순서였다. 문화적 차이가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시댁에서 고통을 받는 이주여성들이 가장 많이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은 모국출신 이민자이거나 모국에 있는 친구(34.9%), 친정가족이나 친척(18.2%)이었으며,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응답도 7.9%나 된다는 사실은 시사점을 준다. 여전히 한국사회가 상대방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보수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주문제는 이미 국민국가 혹은 영토국가 단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사회의 변화에 ‘이주’가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이주를 ‘자본과 노동의 이동’에서 ‘인간과 문화의 흐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쌍방향의 문화적 이해와 교류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류를 정점으로 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연대가 지역과 지역을 잇는 가교로서 값하기 위해 무엇보다 요망되는 것은 동아시아의 교류와 융합이 자국중심주의를 넘어서는 데 있다. 오랜 단일민족신화에서 벗어나 과연 한국사회는 어떤 경로를 밟을 것인가. 우리 안의 아시아는 어떤 것인가.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시혜적·동화적 정책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우리 안에 갇혀있는 다문화에 있다.

<표> 결혼이주자 국적별·성별 현황 (2010년 12월말 현재)
국적 계 중국1 중국계 한국 베트남 일본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몽골 기타
전체 141,654 35,023 31,664 35,355 10,451 7,476 4,195 2,533 2,421 12,536
남자 18,561 3,594 7,605 164 848 204 7 39 55 6,045
여자 123,093 31,429 24,059 35,191 9,603 7,272 4,188 2,494 2,366 6,491



1  한국계 중국인 미포함.
2  2010.12.31. 현재, 인천광역시 결혼이민자 수는 전체 7,947명 중 남자 1,173명, 여자가 6,774명이다.
3  2009년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197개국 출신의 이주민이 살고 있음. 한국인과 혼인으로 인연을 맺은 한국의 사돈 국가만도 127개국에 이른다.




#저자 약력
李世起 1963년 인천생. 시인. 시집으로 『먹염바다』, 『언 손』, 최근 글로 「이주, 꿈을 만나다」 등.
<플랫폼> 통권 : 27 / 년월 : 2011년 5,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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