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주 꿈을 만나다

낯 뜨거운 이주노동 경제학

이세기

임금과 퇴직금 떼이는 사회


스링랑카에서 온 루안(32세)씨와 자말리(29세)씨는 한국에서 6년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산업연수생으로 함께 들어와 3년간 일을 한 후 귀환하지 않고 이곳에서 결혼하여 자발적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이들은 얼마전 지방노동청에 체불된 임금 및 퇴직금을 정산받기 위해 진정인으로 출석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사업주가 불법체류자로 신고해 권리구제를 제때 받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인천 학익동에 있는 △△스포츠에서 2005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2년여를 근무한 이들은 회사측에 퇴직금을 요구했으나, 회사측은 기숙사와 식사를 제공했으니 줄 퇴직금이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뿐만 아니라 임금에 퇴직금을 포함해서 줬다고 하면서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당장 출국하라고 강변했다. 수차례 퇴직금 청산을 요구했으나 받지 못하자,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권리구제를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회사측은 경찰과 회사직원을 동원해 부부가 거주하고 있는 집까지 찾아가 강제 구인을 시도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회사의 관리자들이 밤낮으로 집을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리고, 집에서 나올 것을 종용하며 협박을 일삼자 좌불안석인 채 바깥출입도 못하고 며칠 째 방에 갇혀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진정서를 제출한 후 출석요구로 지방노동청을 방문했는데, 정문에 회사 관리자들이 루안 씨와 자말리 씨를 잡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던 것. 그것도 모자라 경찰이 민원실까지 출동한 것이다.


루안 씨와 자말리 씨는 자신들은 체불된 임금과 퇴직금을 정산받기 위해 온 것이며, 현재 진정처리 중이기 때문에 임의 동행할 수 없음을 출동한 경찰 측에 밝히고, 지방노동청에서 나가줄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측의 관리자와 심한 언쟁이 오갔고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함께 동행한 인권활동가가 민원실에서 경찰을 철수 시키고, 진정내용을 조사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해 일단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경찰은 조사가 끝난 후 연행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은 채 회사측 관리자와 대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근로감독관조차 조사가 일단락되면 경찰에게 부부를 인계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입장을 밝히자, 루안 씨와 자말리 씨는 이러한 상황에서 조사를 받을 수 없다며 진술을 거부한 채 지방노동청을 나왔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회사 측은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악용하여 노예의 족쇄를 채우고,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 그에 따라 정당한 임금정산을 요구한 노동자에게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을 찍어 경찰에 신고한 파렴치한 일이 이 사건의 실체이다.


더욱이 근로감독관은 조사가 끝난 후에 경찰에 통보할 의무가 있다며, 스스로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노력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인권유린의 위험한 작난(作亂)의 줄타기를 하는 일에 동조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느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연행을 감수하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일할 때는 식구처럼, 내 보낼 때는 짐승 보듯 여기는 천박한 노사관계도 문제거니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노동자에게 온갖 이유를 대서 임금정산을 무마하려는 사업주의 작태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우선시해야하는 노동청이 경찰에 인계를 하겠다는 식의 반인권적 태도야말로 있을 수 없는 오늘날 이주노동의 현실인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마치 토끼몰이 식으로 궁지에 몰아넣어 단속, 추방하고 이 과정에서 심한 경우 목숨을 잃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물며 권리구제를 위해 노동청에 방문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강제구인 하는 것은 낮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오히려 발길질을 해 내쫒는다면 그것이 어찌 정의요, 법치겠는가.


거개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구제를 요청한다. 다달이 모아둔 손때 묻은 월급명세서나 달력에 꼼꼼하게 적어 놓은 야근일지 등을 내민다. 단순히 임금을 정산해 달라는 이주노동자에게 일부 사업주들은 임금 외적인 일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 밥 먹여 주고 일자리 주고 재워줬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냐며 핀잔과 함께 기분 나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인종차별적 발언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요구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역설적이겠지만 절망이 오히려 이들에게 구원의 날개일지 모르겠다. 값싼 노동력만을 요구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낯 뜨거운 이주노동 경제학이 존재하는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하루살이와 같은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서글픈 현대인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닐 수 없다.


 
절망하는 기계, 추락하는 이카루스


현재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3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여러 경로로 이른바 불법체류자가 된 다. 산업기술연수제나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온 후 이 제도가 갖고 있는 한계와 입국 당시 지불한 과다한 송출금을 갚기 위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또 관광비자로 한국에 왔다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3D업종의 최대 노동력 제공자가 되고 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최대 피해자이자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적 제약으로 근로계약조건은 구두로 이루어지며 최저임금 이하의 형편없는 노동조건에서 일을 해야 한다.


또한 이들은 고용이 불안정한 직종에 채용되어 법적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일이 없을 때는 무노동 무임금으로, 일이 있을 경우에는 하루 20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일이 빈번하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열악하기 짝이 없는 노동현장에서 각종 복지혜택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역시 사람이다보니 한국인이 겪는 모든 일들을 겪는다. 임금체불, 산업재해, 폭행, 사망 사고, 출산, 자녀 교육 등의 문제들을 동일하게 경험한다.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 보증금을 떼이기도 한다. 하지만 부족한 언어구사능력과 구제절차 및 관계법령에 대한 정보 부족은 한국인에 비해 권리구제에 따른 제한이 따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인의 경우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적성이 맞지 않거나 동료들과 마찰이 있으면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구직을 하면 그만이지만 이주노동자는 그럴 형편이 못된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회사에서 월급을 주지 않거나, 폭행을 당했을 때, 질병과 사고 등으로 그 회사에서 일을 하지 못할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사업장을 옮길 수 없으며 옮기더라도 3회를 넘길 수 없다. 만약 이주노동자가 미운털이 박히거나 회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하면 괘씸하다는 이유로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를 출입국사무소에 통고해 미등록자 즉 불법체류자로 언제든지 전락시킬 수 있다.


게다가 밀린 월급을 요구했다가 사업주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라도 하는 날에는 강제출국을 당해야 한다. 한국인에게 폭행과 사기를 당해도 경찰서에 가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할 수 없다. 형사사건의 피해자가 돼도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강제출국을 당하기 때문에 무엇 하나 자신의 권리를 요구 할 수 없는 상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비애가 아닐 수 없다.


노동부는 최근(6월 20일) 그동안 최저임금위반, 임금체불, 근로계약위반 등 노동권리를 침해당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지방노동사무소를 통해 진정이나 고소를 할 경우 노동관계법위반을 조사하여 구제하도록 한 '외국인근로자 민원처리지침'을 현행 출입국관리법에 대한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폐지하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노동관계법 위반사실을 관할 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이나 고소 할 경우, 우선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를 한 후 노동관계법위반을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등록 주노동자가 노동부를 방문하면 무조건 강제추방절차를 밟게 하겠다는 포고나 다름없다. 이러한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강제추방이 두려워 임금체불이나 부당한 노동조건에서 일을 하더라도 노동부를 찾아가 자신의 침해된 권리를 호소하지 못하게 됐다.


알다시피, 사업장에서 온갖 폭행, 협박, 임금체불, 산재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던 이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인권적인 악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할 진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금구제 등을 위해 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 했다가 경찰에 연행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진정을 위해 찾아온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노동부 감독관이 앞장 서 신고하는 것은 반인권적 행위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노동부가 오히려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일인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실태에 따른 근본적인 개선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강제추방과 노동권 말살을 획책하고 있는 노동부의 행태야말로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며 한국의 이주노동을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일이다. 더욱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관할 지방노동부사무소에 진정이나 고소를 하면 '선보고, 후조치’를 취하라는 새로운'민원처리지침'은 한국 사회가 인권 후진국임을 자처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부의 ‘외국인근로자 민원처리지침’ 폐지 방침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과 노동권의 침해를 부추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즉각 철회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출입국관리법상의 공무원 통보의무 조항을 즉각 폐지해야 한다. 말로만 글로벌 스탠다드를 외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최소한의 권리인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보호야 말로 ILO와 국제이주협약의 법적 규약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최근(9월 25일)「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사용자가 제공하기로 되어있는 기숙사 역시 이주노동자의 부담으로 전가시키고, 심지어 최저임금법을 개악해 최저임금을 유예할 수 있는 기간을 6개월까지 연장해 최저임금 수준도 지급하지 않겠다고 한다.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 규제를 완화하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살인적 수준의 착취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개선이 아닌 개악인 셈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단속과 추방의 공포.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인간으로서 살 권리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이야말로 야만시대가 아닌가. 이들에게 공존을 통한 상생을 추구한다는 다문화사회는 요원할 따름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지 못하는 반인권적인 출입국관리법이 존치하는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이상,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끊임없이 양산될 것이며 인간으로서의 행복추구와는 거리가 먼 삶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바깥출입을 엄두도 못내는 감옥 같은 방안에서,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한국의 3D업종의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절망하는 기계이자, 끊임없이 추락하는 날개 없는 이카루스에 다름 아닌 것이다.

 

 * 고용허가제인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4장 25조 ‘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의 허용’을 보면 일방적으로 사업주의 입장에서만 사업장 변경의 허용이 언급되고 있다. 1.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기간중 근로계약을 해지하고자 하거나 근로계약이 만료된 후 갱신을 거절하고자 하는 경우. 2. 휴업·폐업 그 밖에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그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리고 25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다른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의 변경을 신청한 날부터 2월 이내에 출입국관리법 제21조의 규정에 의한 근무처 변경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사용자와 근로계약 종료후 1월 이내에 다른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의 변경을 신청하지 아니한 외국인근로자는 출국하여야 한다. 또한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외국인근로자의 다른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의 변경은 제18조 제1항의 규정(취업의 제한)에 의한 기간중 원칙적으로 3회를 초과할 수 없다.(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집 2007.9)

 

 글쓴이 시인이며, 인권운동가로서 현재 아시아이주문화공간 <오늘>에서 일하고 있다.

* 이 글은 <삶이 보이는 창>65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