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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꿈을 만나다

이주노동자 시인, 하킴 아무도 모른다, 나를 하킴 세상이 옛날처럼 돌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항상 바쁘다 달과 태양 그리고 별들이 옛날처럼 빛을 주고 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어둡다 나는 왜 나처럼 되었나 나의 마음은 아프다 어느 날 하루 나는 마른 꽃처럼 마음도 말랐다 당신은 나를 알아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바보처럼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다 하나의 진실을 꼭 잡으면서 너는 나를 버린다 나를 바보라고 그래도 나는 왔다 당신의 사랑을 위해 당신은 나를 모른다 하늘은 있지만 구름이 없다 나는 어디에도 없다 바람은 있지만 나는 어디에도 없다 * 1994년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한 회사에서만 12년간 일한 하킴은 2009년 6월18일 야근 근무 도중 방글라데시 동료 5명과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에 의해 출입국관리법.. 더보기
경제위기의 희생양 이주노동자 이 세 기 일이 없는 이주노동자 누구에게나 고비가 있다. 험난한 세상의 파고를 넘는 일이 어찌 수월하겠는가. 이주노동자도 예외는 아니다. 이역만리에서 가족과 헤어져 홀로 고된 이주노동을 견디며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넘는 일이 녹록지만은 않다. 아밀라(26세, 스리랑카)씨는 요즘 조바심이 부쩍 늘었다. 구직기간 만료가 2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재취업 기간 내에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백방으로 구직을 위해 돌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의정부, 평택, 원주 등 안 다녀 본 곳이 없다. 웬만한 고용지원센터는 거의 찾아 다녔지만 번번이 헛걸음이 되고 말았다. 어떤 날은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고용지원센터에서 대기도 해보았지만 일거리가 없어 되돌아와야 했다. 구.. 더보기
갈 곳 없는 이주청소년 이세기 방에 갇힌 아이들 벌써 세 번째다. 중국에서 온 장리(여, 16세)를 만난 것이. 장리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평소에 알고 있던 이주민으로부터 자신이 알고 있는 중국 하얼빈(哈爾濱)에서 온 결혼 이주여성이 있는데,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만나잔다. 함께 찾아간 집은 전철 철로변에 닥지닥지 붙어 있는 연립주택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앳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문을 열어준다. 이름을 묻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다. 그저 웃음뿐이다. 아이의 어머니인 왕홍위(42세)씨가 딸이라고 한다. 한국에 온지 3개월밖에 안되어 말을 할 줄 모른단다. 장리가 공책에다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썼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딸과 함께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한 왕홍위 씨는 2005년 결혼 이주로.. 더보기
두 이주민의 세상살이 싸왓디카, 티마폰 씨의 노래 고향에는 부모님이 계신다 사람들이 친절하다 물소가 생각난다 여러 가지 야채가 많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 티마폰(26세)씨가 ‘이주민과 함께하는 아시아 문학 낭송제’에서 낭송한 「고향」이라는 자작시다. 고향의 향수가 행간에 짙게 묻어 있다. 한줄 한줄 정성껏 읽어 내려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언뜻 그녀가 살던 태국의 동북부 농카이가 떠올랐다.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논에 물소 떼가 어슬렁거리고 여유롭고 순박한 삶이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지듯 떠오른다. 낭송을 마치자 그녀는 한국어를 공부하며 난생 처음 시를 썼다며 수줍어한다. “제 고향 농카이는 라오스와 국경 지대에 있어요.” 그녀는 농카이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타버라는 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오기 전까지 회사생활.. 더보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불온한 상상력, 이주노동자 이 세 기 추방의 공포와 불안 이슬람(30세)씨는 한국에서 열한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그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17살 때 이주노동자로 왔다.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김포 대곶에 있는 다이캐스팅 공장에서 3년 동안 노역에 가까운 일을 했다. 공장 담벼락에 붙어있는 컨테이너 쪽방에서 동료 4명과 함께 숙식을 했다. 아침 8시에서 저녁 8시까지 꼬박 쇳가루를 먹으며 자동차부품용 주물을 뽑아냈다. 샤워장도 없는 방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동료들과 새우잠을 자면서 한 달에 수당을 포함해서 60여만 원을 벌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꿈이 있었다. 3년 동안 일을 해 번 돈으로 고향으로 귀환하여 조그만 의류공장을 차리는 게 그의 꿈이었다. 자고 일어나 몇 발자국만 가.. 더보기
낯 뜨거운 이주노동 경제학 이세기 임금과 퇴직금 떼이는 사회 스링랑카에서 온 루안(32세)씨와 자말리(29세)씨는 한국에서 6년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산업연수생으로 함께 들어와 3년간 일을 한 후 귀환하지 않고 이곳에서 결혼하여 자발적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이들은 얼마전 지방노동청에 체불된 임금 및 퇴직금을 정산받기 위해 진정인으로 출석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사업주가 불법체류자로 신고해 권리구제를 제때 받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인천 학익동에 있는 △△스포츠에서 2005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2년여를 근무한 이들은 회사측에 퇴직금을 요구했으나, 회사측은 기숙사와 식사를 제공했으니 줄 퇴직금이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뿐만 아니라 임금에 퇴직금을 포함해서 줬다고 하면서 불법체류자이기 때.. 더보기
귀환 이주노동자 리아 이야기 1. 리아가 사는 섬 우기가 막 시작된 필리핀 세부(Cebu) 막탄공항에 내리자 열대야의 후덥지근한 날씨가 기다렸다. 자정을 넘은 시간, 차를 타고 보홀(Bohol)행 배가 떠나는 항구까지 이동했다. 필리핀 사람들은 밤잠이 없는지 새벽으로 가는 시간인데도 어둑한 거리에 사람들이 서성인다. 삼삼오오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새벽 2시. 항구의 여객선 터미널에는 정문을 지키는 경비와 몇몇의 필리핀 사람들이 대합실 의자에 잠들어 있다. 밤샘을 할 요량으로 매표소 앞 맨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웠다. 하지만 초행길인 탓도 있지만 사람들의 오가는 발길로 잠이 오지 않는다. 간간이 항구에는 배가 들어와 여행객을 풀어 놓는다. 여느 객선 터미널과 다를 바 없다. 소란이 멈추고 여행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또 다시 정적.. 더보기
애리카의 꿈 깨어진 꿈 애리카(13살)의 집은 반지하다. 미로 같은 다세대주택이다. 말이 반지하이지 햇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다. 여기서 아버지인 후세인 씨(41세, 방글라데시)와 어머니 오성혜(39세) 씨 그리고 동생 환희(5세)가 함께 살고 있다. 요즘 애리카는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동생 환희와 노는 시간도 많아졌지만, 무엇보다도 인터넷을 통해 친구들과 쪽지대화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친구끼리 쪽지를 주고받는 에리카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비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근에 있는 핸드폰 조립공장에서 함께 근무한다. 아버지가 전에 다니던 공장이 폐업한 후 직장을 잡지 못하다가 겨우 집 근처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어머니도 도 아버지가 다니는 공장에서 부업으로 일하다가 아예 눌러 앉았다... 더보기
재이주를 꿈꾸는 필리핀 귀환 이주노동자들 재이주를 꿈꾸는 필리핀 귀환 이주노동자들 이세기 얼마 전 나는 귀환 이주노동자 리서치를 위해 필리핀을 방문했다. 필리핀은 전 인구의 10%인 800여만 명이 이주노동을 하는 세계 최대의 인력송출 국가다. 필리핀 연간 총생산(GNP)의 30%가 넘는 120억 달러가 바로 이주노동을 통해 송금해온 돈이다. 해외이주노동을 희망하는 필리핀인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수도 마닐라(Manila)에 위치한 필리핀해외고용청 POEA(Philippines Overseas Employment Agency)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다. ‘나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간다’는 노동력 수출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보홀(Bohol)필리핀 중부 비사얀제도 남부의 섬에서 만난 레오(26)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인근 세부(C.. 더보기
솔롱고스를 떠나는 아이 이주민 몽토야 부부 손세차장에서 일하는 몽토야(37살) 씨는 한국에서 10번째 여름을 맞고 있다. 그 사이 큰 아들 서타밀(7세)이 태어났고, 최근 볼강타미가 태어났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서타밀은 또래 아이가 그렇듯이 천진난만하다. 타밀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몽토야는 여러 가지 걱정을 했다. 아이가 또래와 잘 어울릴까, 왕따는 당하지 않을까 지레 걱정을 해야 했다. 그나마 타밀의 피부색이 한국인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이었다. 타밀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던 친구들이 몽골아이라는 것을 알자 그때부터 놀림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얼굴색에 대한 혼란을 겪지 않았지만 어눌한 말씨 때문에 영락없이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기 일쑤다. 몽토야는 아이가 학교에 돌아오는 .. 더보기